59화. 성수기.
59화. 성수기.
명절을 앞둔 백화점은 최고의 성수기다. 각 물류마다 평소에 두 세배의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로 인해 검품 장은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어진다. 선물세트들도 엄청나게 들어오기 때문에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물류 차들도 순차적으로 들어오면 좋은데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는 것도 또한 문제이다. 여기저기 물류회사에서 보낸 용달차 기사님들은 물건 안 받아 준다고 아우성이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영길이와 내가 반품을 챙겨 오는 사이 필진이 형이 들어오는 차들을 받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얼마 전에 부족했던 구르마가 4개 정도 늘어서 일하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신형 구르마들은 손잡이들을 달아서 끌 때 힘도 덜 들고 방향 컨트롤도 잘 된다. 각자의 회사에서 제작을 해서 비슷하게 다른 것들이어서 하나하나가 다 느낌이 다르다. 그간의 물류 경험을 통해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기사들과 알바들의 경험의 축적되어 만들어낸 신형 구르마는 첨단의 기술을 자랑했다. 그래도 줄로 끌고 다니는 예전 구르마들은 드리프트가 가능해서 요긴한 점도 있다. 구르마는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각 백화점마다 행사들이 많이 잡히다 보니 매장 간 이동 물량이 넘쳐난다. 전문용어로 점간 이동이라고 한다. 점간 이동 물건들은 같은 박스로 로테이션이 되기 때문에 몇 군대 돌고 온 박스들은 상태가 난리도 아니다. 여기저기 터진 박스들을 박스 교환 없이 테이프로 수술을 해서 이동을 하 기 때문에 아무래도 종이 재질보다는 테이프로 감싼 부위가 손에서 잘 미끄러진다. 박스를 놓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박스는 더 빠른 속도로 낡아진다. 그리고 박스 바깥쪽에 수량과 품번을 정리해서 종이에 부쳐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 들은 이동 중에 찢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박스 양으로 물건 양을 보지만 각 매장에서는 그 안의 수량과 품번 까지 체크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리보다 매장 직원들이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명절은 앞둔 백화점은 대목을 앞에 두고 있기에 어느 곳보다 바쁘다.
아무리 바빠도 물건을 검수하는 것은 게을리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넥타이 10개 들은 쇼핑백이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안에 들어있던 제품들은 모두 정상 제품이라 150 만 원 정도 되는 물건이라고 했다. cctv까지 보며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해당 기사님과 우리 물류 알바들이 각출을 해서 메꿔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직원가로 우리가 물건을 산 것으로 처리를 해서 75 만 원 정도로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들어올 물건도 나갈 물건도 많아지다 보니 출근을 하는 시간은 빨라져야 되고 자연스럽게 퇴근을 하는 시간도 늦어지게 된다. 백화점에 출근을 해서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면 극한의 허기를 경험을 하게 된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주린 배에 아무리 음료수며 커피를 때려 넣는다고 해도 빈 속에서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는 어디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너무 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안양시장에 들러서 삼겹살과 싸 먹을 쌈 채소와 막걸리 몇 병을 사 가지고 새로 이사한 우리 작업실에서 벌이는 고기 파티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뻘쭘해하던 녀석들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저마다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준비에 동참한다. 은식이는 취사병 출신답게 상추와 깻잎을 씻고 영규는 돗자리를 찾아서 돗자리를 깔고 가스버너 세팅을 한다. 주현이는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영길이는 수저며 반찬을 세팅을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면 이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열 수 있는 창문들은 모두 열어젖히고 고기를 구우면 허기진 상태의 몸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냄새까지 다 먹 어치 울기 세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고 삼겹살은 진리다.
“ 다들 소식 들었지? 도우미가 드디어 망했대.”
아침에 필진이 형과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내가 꺼내놓았다. 몇 달 페이가 안 나와서 아무래도 불안하더니 결국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 그래요? 불안하더니. 오히려 잘됐어요. 이제 도우미가 왔네. 안 왔네. 기다리고 전화하고 그런 상황은 안 오겠네.”
고기가 익자마자 크게 한 쌈을 싸서 먹는 영길이가 받아친다. 도우미에서 받는 돈으로 영길이 페이를 채워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필진이 형과 의논도 할 겸 오늘 자리를 마련했는데 형은 바쁜 일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필진이 형은 이혼을 한 누나와 부모님과 조카들과 같이 사는데 이혼을 하면서 조카가 방황을 많이 해서 그 녀석을 찾으러 다니느라 어쩔 때는 정신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아마 오늘도 조카 문제가 아닐 듯싶다.
“ 영길 씨 페이 문제도 있고 필진이 형과 의논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부정교합이라 고기보다는 회나 생선을 좋아하는 영규가 본인이 먹을 만한 고기를 뒤적거리다 입을 연다. 작은 물류들은 얼마나 돈을 받고 일하는지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영길이 페이를 어디서 충당을 해야 하는지 다 같이 모여 상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탑 코리아 페이와 도우미에서 나오는 페이 중에 20 만 원을 주고 있었는데 그것도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나온 결과이다.
“ 이번에도 각자 조금씩 양보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 스피델 물류에서 갑자지 행낭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면서 페이가 10만 원 올랐었다.
요즘 스마트는 감당이 안 되는 만큼 물건이 많이 들어오는데 담당자와 페이 협상 같은 것을 해봐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알기로 다른 백화점 같은 경우는 용달차로 몇 대씩 들어오면 본사에서 직원을 파견한다던지 무슨 방법을 모색해주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연합으로 한다는 것을 물류회사마다 소문이 나서 어떻게든 돌아간다고 여기는지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 내일 필진이 형과 대화해봐야지. 오늘 우리끼리 말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나오겠어요?”
아직 백화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은식이는 탑 코리아 동승 알바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녀석은 여기 롯데 안양보다 평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탑 코리아 물량이 평촌 엔씨 백화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 코리아는 동승과 상주 알바를 둘이나 쓰는 것이다.
“ 그나저나 웰 기사님 바뀐다면서요? 김 기사님은 어디 다른 일 하시려나?”
고기를 먹으면 쌈을 많이 싸서 먹는 영길이가 웰 기사님 교체 사실을 들었나 보다.
“ 맞아요. 다른 지역으로 가시는 거 같던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평소에 기사님과 사이가 좋았는데 기사님이 바뀐다고 하면 동승 알바는 조금 위축되기 마련인데 영규 녀석은 괜찮은가 보다.
기본적으로 우리 일을 많이 도와주는 분들이 계신 반면, 백화점에 들어와서는 짐을 내리고는 일을 전혀 안 하는 기사님들도 있다. 물건을 내려주는 본인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진짜 물건이 많아서 낑낑대고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이번 기사님도 조금 호의적인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물류에 대한 대화들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이렇게 회식 아닌 회식 같은 만찬이 이루어지는 날이면 일인당 일 만원씩만 각출하면 1차는 문안하게 넘긴다. 각자 일정에 바쁜 일이 있으면 각자 볼일을 보러 가지만 그렇지 않고 별일도 없고 술을 조금 덜 마셨다 싶으면 2차로 이어진다. 2차는 바로 영길이 집으로 가서 콘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영길이는 플레이스테이션 3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럿이 할 수 있는 게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축구게임이다. 영길이는 같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컨트롤러를 세 개나 더 장만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 축구게임은 나도 컴퓨터로 간혹 가다가 즐기던 게임이어서 같이 편을 먹고 게임을 하는 재미가 생겼다. 영규와 은식이는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구경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구경을 할 때가 더 가관이다.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것 같이 과 몰입을 해서 보기 때문에 욕먹지 않으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치 국가 대표처럼.
이렇게 신나게 놀다가도 해가 떨어지면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우리들은 새벽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날 너무 무리를 하면 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