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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귀분 Sep 16. 2023

나는 죽었었다

                                                                              강 귀 분  2023. 9. 12.

  

     자정이 다된 시간에 수백 미터가 넘는 긴 강 다리를 여자가 홀로 건너고 있었다. 달빛도 없는 캄캄한 그믐밤. 외등도 없고 가끔 지나가던 군용차도 인적도 완전히 끊겼다. 전쟁 중에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 철도 침목을 연결하여 임시로 건설한 다리가 바닥에 구멍까지 뚫려 있어서 낮에도 발 밑을 살피며 걸어가야 하는 위험한 곳이다. 하이힐의 또박또박 소리가 적막한 밤공기를 가르며 멀리 울려 퍼졌다. 

     그날은 일이 늦게 끝났다. 신입사원이던 나는 회식에 빠지겠다는 말도 못 하고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면 소재지까지 합승택시로 왔지만 강 다리를 건너 2키로가 넘는 집까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버스 종점 근처에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질을 하거나 여자들을 희롱하는 불량배 들의 집합소다. 그 시절 어설픈 시골 깡패들 모이는 장소가 어느 지역이든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 가계 앞을 지나쳤다.

    다리를 반쯤 건너가고 있을 때, 뒤에서 서너 명의 거친 발소리가 뒤섞여 따라오고 있었다. 저들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따라오는 듯했지만 고요한 밤공기를 가르며 거친 숨소리까지 내 귀에 들려왔다. 순간 나는 큰 위기가 닥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재빨리 하이힐을 벗어 들고 뛰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얗게 비고 침이 마르고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다. 들짐승들이 작은 새끼 양을 찢으려고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다. 급박하고 무서웠다. 나는 어디에 숨을 것인가? 죽을 힘을 다해 뛰면서 애타게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다. “하나님! 나 어떻게 하죠? 살려주세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리를 거의 건넜다. 이때다. 눈에 번개가 번~쩍 하더니 큰 천둥소리가 꽝~하고 머리를 때렸다.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바꿔라!”였다. 우리 집은 직진이다. 왼편은 낭떠러지이고, 오른쪽이라고요? 강을 건너자마자 오른쪽은 강둑이 길게 뻗어 있고 ‘뚝방’ 끝에 멀리 동네가 있다. 강으로 면한 둑은 장마에 대비하여 축대를 쌓고 강물이 닿는 곳은 잡목과 가시덩굴이 엉키고 잡초가 무성하다. 들쥐와 뱀이 자주 보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음침한 풀숲이다. 숨을 곳은 그 곳밖에 없다. 나는 그곳으로 미끄러져 몇 바퀴를 굴러 가시덤불속에 파묻혔다. 죽은 듯이 엎어져 있었다. 이마에서 끈적한 피가 눈으로 흘러 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죽은 건가? 생사의 경계가 아득했다. 뒤쫓아온 그들이 수풀을 헤치며 “이 근처에서 없어졌어. 분명 여기 숨었어. 지가 어디 갔겠어?” 이리저리 풀을 헤집으며 한참을 찾고 있었다. 


   "얼마나 지냈을까?"  

    동네 쪽에서 온 동네 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하고 한 떼의 사람들이 손전등을 흔들면서 이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의외의 사람들의 출현에 놀란 그들은 황급히 오던 길로 도망쳤다. 밤이 늦도록 집에 오지 않는 나를 마중 나오던 아버지는 종점 근처 대포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 술 추념을 하느라 딸의 마중을 잊고 있었다. 그 날 밤 늦게 초상집을 다녀오던 문상객들과 짙은 어두움이 나를 지켜주었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강을 따라 길게 난 뚝방 길은 차도 못 다니는 좁은 길이었다. 마을과의 거리도 아득히 멀다. 겁에 질려 머리가 마비된 내가 어떻게 그곳으로 숨었으며 온 동네 개들은 어째서 한꺼번에 짖었을까? 갑자기 등장한 문상객의 출현은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닌가?  만신창이로 크게 다친 나는 며칠 동안 앓아 누었다. 


   나의 20대에 가망 없던 세계 최빈국에서 두 세대만에 많은 것이 변하고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역사에 없었던 기적의 풍요를 누리며 잘 살게 되었는데 국민들의 의식도 가치관도 문화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나?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가? 법 위에 가중 처벌법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바뀌어도 갖가지 범죄 방법과 수치는 저만치 앞서간다.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대로 양성 평등과 인간다운 존엄으로 서로 존중하며 사는 그날은 한낮 꿈일 뿐인가?

   영동고속도로를 가다가 보면 멀~리 그 다리가 보인다. 철도 침목으로 만들었던 엉성했던 다리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의젓하게 서 있다. 나는 더 빠른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가 생겼는데도 영동고속도로로 다니기를 고집한다. 그때 내 귀에 천둥 치듯 들렸던 윗분의 다급하고 안타까웠던 그 음성을 추억 속에서 환청이라도 듣고 싶어서다. 

    그 다리 위에 잠깐 멈추어 묵념하듯 눈을 감고 있으면 그 분의 햇살 같은 따듯한 은총이 가슴 한가득 차오르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너를 낳은 어미는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내 하나님. 사는 동안 하나님은 내게 수없이 소리를 치셨을 것이다 “멈춰라! 방향을 바꿔라!” 나는 헛되고 헛된 것에 한눈을 파느라고 그 엄중하신 하늘의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체 내 맘대로 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믿는다. 그때. 그 천둥소리는 벼랑 끝. 낭떠러지에 매달린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구원의 밧줄이었음을!!!. 그 사랑의 음성이 날마다 애가 타고 눈물 나도록 그립다. 나는 오늘도 서녘 노을이 짙어 가는 요단강 강가에 서서 “사느라 수고했다. 어서 오너라!”는 하늘아버지의 다정한 마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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