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우는’ 아름다움

전시회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다녀오다.

by SH LEE


국립현대박물관, 중앙박물관에서 이건희 기증전 두 곳을 관람하면서 많은 한국 예술들을 접했습니다. 그림과 전시회를 좋아한답시고 서양화만 쫓아다녔는데 한국 예술도 이렇게 뛰어나다는 것을, 가까운 곳이 있었다는 것을 일찍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내 나라의 예술도 모른채 외국의 예술만을 찬양한 스스로에게 부끄러움도 들더라구요.




각설하고, 이건희 소장전 작품 중 넋놓고 관람했던 제품이 몇 있는데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중앙박물관의 ‘불국전경’입니다. 7월 동안만 전시되는 작품으로 순백의 눈이 포근하게 불국사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설경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지붕과 처마 위, 나무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쌓인 눈에 윤곽선이 눈이 온 직후에 부슬부슬하게 눈이 쌓인 것처럼 미세한 윤곽선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 미세한 질감 표현에 놀란 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그 소복함을 색을 ‘칠함’으로 채운 것이 아니라 주변을 칠하고 해당 부분을 ‘비움’으로써 주변 물감이 스며드는 것을 이용하여 눈이 쌓인것 같은 질감처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내신 공부할 때 책으로만 공부했단 한국 미술의 ‘여백의 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설경의 주된 소재인 지붕, 나무 등에 쌓인 눈을 되려 비움으로써 채우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통상적인 서양화는 캔버스에 물감이 칠해져있지 않으면 덜 칠한 부분 또는 해당 작품을 미완성작으로 보는게 대부분입니다.


저 역시 비어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활동이 없이 비어있는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심지어 불안해하죠. 휴가, 주말은 온통 누구를 만나야 하고 무언가를 해야하는 일정들로 시간을 꽉꽉 채우기 바쁩니다.


물론 다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겠지만 정작 쉬어야하는 휴일과 주말에 쉬지 못한 채 쫓김 긴박함을 느끼기 바빴던거죠. 그러다보니 저도 사람인지라 연초에 야심차게 세워놓은 계획들을 달성해가다가도 여름즈음에 더위와 함께 힘이 빠지더라구요. (올해도 역시)


그래서 올해는 채우기만 바빠하지 말고 가끔씩은 비워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참 좋은 소식이 많지 않아서 이래저래 힘빠지는 올 한 해인데, 비움으로써 다른 차원의 채움을 해나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찾아보려고 합니다. 한 번 쯤은 채우기만 바빴던 스스로를 위해 반대로 한 번 비워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