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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Nov 25. 2021

돈 많이 안벌어와도 괜찮아

거짓말은 하지 말고

지점이 통폐합되면서 남편의 근무지도 바뀌었다. 새로운 지점에서 적응하려면 당분간은 고생하겠네 했는데 웬걸. 앞으로는 퇴근 시간이 한 시간이나 빨라질 거란다. 저녁 식사 중에 이 소식을 자랑하듯 전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응, 잘됐네. 오빠, 퇴근이 빨라지면 이제 해야할까?"


밥을 입으로 가져가던 남편이 순간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도, 돈 벌어야지.


잉?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건가 싶다. 말은 왜 더듬는 건데?

"돈을 번다니 무슨 소리야?" 하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투잡 해야지." 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이게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또르륵 또르륵 눈알을 굴렸다.


"아니 내 말은 이제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하라고. 집안일을 좀 하란 말이었어."

"아~ 그런 거야?"


어쩐지 안도하는 듯한 남편의 반응에 진짜 투잡 하려고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아니. 뭐라고 대답해야 안 혼날까 순간적으로 생각했어.



내가 평소에 돈돈 거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남편은 어째서 나의 물음에 이러한 답을 도출했을까. 무의식 중에 내가 돈을 더 벌어오라고 부담을 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내 월급도 쥐꼬리인 주제에 남편의 쥐꼬리를 가지고 타박하거나 눈치를 준 적은 맹세코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뻔뻔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잠깐. 지금 이 사람이 뭐란 거야?


"오빠  그럼 투잡을 할 마음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거짓말한 거야? 혼나기 싫어서?"

"응!"


와 정말. 내 남편이지만 이 남자를 어찌해야 하나 기가 막혔다. 남편이 남친이던 시절, 결혼하면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돈봉투나 받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전남친이 된 남편은 이제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더해야지 무슨 소리냐며 열심히 하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해준다. 그리고 이젠 그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한다.


누가 그랬던가.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고. 우리 남편은 암만 봐도 '애' 쪽인 듯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관심이 아예 없는 건지 남편은 그저 구운 소고기를 입에 넣으며 역시 비싼 거라 안질기고 맛있다는 감탄을 연발했다.


남편 말대로 소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았다. 버터를 바르지 않았어도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이 소고기는 며칠 전, 남편이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올해 남편은 마흔이 되었다. 생물학적 나이는 40인데 정신연령은 여전히 어린애 같은 남편이라니. 웃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울기는 더 뭣한 이상한 기분.


에라 모르겠다. 쥐꼬리를 소꼬리로 만들어오라고 하지 않을 거고 사모님 소리 듣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남편 아프지 말고 건강하기만 해주면 좋겠다. 여든살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소고기를 꿀떡꿀떡 삼켜주라 남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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