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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Feb 22. 2023

헤어질 결심

건강한 과자는 없나요

어느 날 갑자기 옆구리를 시작으로 배와 등에 빨간색 고리모양의 반점들이 생겨났다. 일단 지켜볼까 했지만 처음 발견했을 땐 4개이던 것이 그날 저녁에는 12개, 다음 날 아침엔 30가까이 늘면서 목과 팔까지 빠르게 번져나가는 걸 보니 덜컥 겁이 나 피부과를 찾았다.


백발이 성성한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

"요즘 엄청 힘든가 봐요?"


', 나 이것과 비슷한 말을 재작년에도 병원에서 들었었는데. 그땐 '어휴~ 엄청 힘드시겠어요' 였었지 아마. 그런데 내가 지금 힘든가?'


대답을 선뜻 못하고 있으려니 의사 선생님  왈.

이것은 피부감기라고도 하는데 몸이 많이 힘들어서 면역력이 망가지면 생기는 것이니  무조건 잘 먹고  자고 푹 쉬는 게 능사이니라.


병원에 오기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 봤던 것이 떠올라 이게 혹시 장미색 비강진이냐 묻자 선생님은 다 알고 온 것 같으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며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에 나와있는 설명을 찾아보라는 말로 쿨하게 진료를 끝내셨다.




일평생 골골대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이가 깡패라고, 지금까지는 젊음을  방패 삼아 그럭저럭  탈 없이 살아왔는데 확실히 나이 앞자리에 숫자  4가 달리바로 티가 난다.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생전 없던 피부병이 다 생기다니. 사십.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몸이 자꾸 아프고  고장 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바꾸지 못했던 나쁜 생활습관을 이번 계기로  싹 다 고쳐보는 거다.

내 나이 또래는 알 텐데 90년도에 개그맨 이휘재씨가 'TV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행시킨 말이 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결심했다. 나는 올해 반드시 헤어질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과자들과.


달콤하고 짭짤하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폭신하고 바삭한 과자. 밥 대신 먹고 간식으로 먹고 야식으로 먹는 과자. 생각만으로도 웃음 짓게 만드는 행복회로




남편에게 나의 결심을 전했다. 그리고 비웃음을 샀다. 응원은 못할 망정 너는 절대 못 할 거라며 악담을 한 남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를 꼬셔댔다.

"과자 사러 마트 가자. 얼른 옷 입어."


나쁜 인간 두고 봐라. 오늘까지만 먹고 진짜 안먹을 거니까.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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