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제게는 정말 멋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키도 훤칠했고, 얼굴도 잘생겼으며, 목소리도 또래보다 성숙해서 듣기 좋았지요.
게다가 운동까지 잘해서 늘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주목받던 친구였습니다. 그 시절, 사춘기가 시작되던 저는 유난히 외모와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운동장에서, 어쩌면 거울 앞에서조차 저는 늘 그 친구와 저를 비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친구처럼만 되면, 나도 멋져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시작한 건 작은 흉내였습니다. 그 친구의 걸음걸이를 따라 해 보고, 말투를 흉내 내고, 웃는 방식을 비슷하게 바꾸려 했습니다. 심지어 손을 주머니에 넣는 사소한 습관까지 따라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제가 그 친구가 된 것 같았고, 괜스레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친구라면 어떻게 말했을까?”였고, 어떤 상황에 놓여도 “그 친구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제 안의 ‘나’라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저였지만, 점점 더 제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멋져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은 공허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려 애쓰는 동안 정작 저는 저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은 제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남과 비교합니다. 나보다 더 잘나 보이는 친구, 더 인정받는 동료, 더 멋져 보이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고, 때로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을 흉내 내며 얻는 건 잠깐의 만족일 뿐,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흉내 속에서 내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 진짜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진정한 멋은 흉내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툴러 보여도, 부족해 보여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가진 목소리, 내가 가진 표정, 내가 가진 생각을 존중하는 순간, 비로소 나다운 빛이 나옵니다. 남과 같은 옷을 입지 않아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나만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어쩌면 그 친구가 아니라 ‘나 자신’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며 잠시나마 용기를 얻었지만, 결국 그 과정이 저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나는 다른 누구도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는 확신합니다. 나는 나이기에 충분합니다.
나의 속도로, 나의 목소리로,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멋이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