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꼭 안아주고 싶은 어린 나에게.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얼굴조차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부재만큼은 제 삶을 감싸는 공기처럼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께서는 유난히 자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항상 행동 조심해라. 애비 없는 자식 소리 듣는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건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일까?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이런 생각들이 서서히 마음에 뿌리내렸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가족뿐 아니라 친구, 선생님, 동네 어른들까지—누구와 있어도 표정을 읽고, 말투를 살피며 행동하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 저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래처럼 장난을 치기보다 조용히 행동했고,
어른들이 시키는 일은 묵묵히 해냈습니다.
덕분에 ‘듬직하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무겁게 들렸습니다.
마치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스스로 떠안은 듯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저는 늘 ‘모범생’이었습니다.
반장을 맡고, 봉사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성적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한민국 모범 청소년상’까지 받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상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답은 간단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 없는 애’라는 말 뒤에 다른 꼬리표가 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하는 불안이, 제 모든 선택의 방향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저를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말을 해줄 사람도, 그런 말을 믿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저는 늘 남들의 시선을 살피고, 제 마음을 조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받아야만 안심이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남들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칭찬보다, 내가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직 완전히 눈치를 버리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시선에 휘둘리진 않습니다.
그러니, 제 과거의 저에게도, 지금의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눈치 보자구요^^~!
우리 인생은 남의 시선 속이 아니라, 내 발걸음 속에서 완성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