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들었다가 덜 깨서인지 머리가 찌끈거렸다.
눈살을 찌푸리고 비몽사몽한 정신을 가다듬고 울고있는 은심이를 돌아다보며 물어보았다.
" 너, 왜 우니? 엉?.. 무슨일이야~?"
" 흑...흐~억."
울기만 할뿐 답이 없다.
" 너 아까 잠 안잤댔니?..어? 아~말해야 알지."
그러자 은별이가 하는 말.
" 저..주인놈이 언니랑 내 자는데..글쎄...언니를~~겁탈하겠다구... 짐승같은 새끼."
" 뭐?~~"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뭔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것 같았다.
" 경호동지는...흐~윽..내 발버둥 치면서 옆에서 그렇게 흔들구 꼬집구 했는데도..흑.."
은심이가 나를 원망하며 하는 말이다.
아~하, 그래서 내 허벅지가 그렇게 아팠었던거였구나.
그러구보니 팔이며 옆구리쪽도 아픈것 같기는 하다.
내가 얼마나 깊이 잠들었으면...
" 어~~미친놈, 나두 몰랐다. 저 새끼 이자 지나가면서 내 팔을 밟구 지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아파서 깨어 보니까..주인놈이더구나."
금혁이아빠가 하는 말이다.
하~아. 진짜 짐승같은 놈이네. 이 좁은 방안에서...어떻게 그런 미친짓을...
은심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가 곰같은 덩치의 사내힘을 당해내느라 악을 쓰며 바로 옆자리의 내가 일어나주길 얼마나 바랬으랴.
휴~~옆에서 그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나는 세상 모르고 꿈속을 헤메고 있었으니...
" 그랬구나.~~미안하다. 은심아~너무 정신없이 자다보니까...그런줄도 몰랐네. 어~휴, 미친놈."
" 아~~내 뭐하러 별이까지 데리고 흐~윽.얘까지 개고생 시키면서 ...흑흑 ~ 저런 짐승같은새끼한테..이런 치욕이나 당하구...
아..흑~흑,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남의 나라 땅에와서 돈 몇푼이나 벌어가겠다구..흑.흑~ 배 고프면 배 고픈대로..추우면 추운대로..그냥 집에 있었을걸..흑흑.."
은심이 울면서 늘여놓는 푸념이다.
나는 괜히 내가 이 고생을 시킨것같아 그의 푸념이 나를 향한 원망처럼 들렸다.
아니, 그의 말이 맞다. 내가 왜 그들을 가자고 추동질 했단가.
그러지 않아도 준영이를 떼어놓고 오지 못하고 이 산속에서 죽임을 당하게 한게 너무도 맘이 아프고 무거웠는데 은심이네까지...
그한테 뭐라 할말이 없다.
" 저~~기, 은심아... 여자 한명 데리구 가자구한건 내가 그랬다. 경호한테 너무 그러지 말아라. 얘두 지금 준영이 저 산속에 두고 온것때문에 맘이 아플낀데.."
금혁이아빠도 은심이의 넉두리가 나를 향한 원망임을 알고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고있는것처럼 그한테 말했다.
아~~그런데...은심이,
치욕을 당하고 울고있는 그를 달래야 하는데... 저 놈의 밥냄새~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눈길이 밥가마쪽으로 간다. 목구멍으로 군침을 몇번이나 삼키는지 모른다.
거기에다 흰쌀밥이다. 일년에 한,두번 먹어볼까 말까하는 흰쌀밥이 다 익어 고소한 냄새를 온 집안 가득 풍기고 있는것이다.
당장이라도 가마 뚜껑을 열어 퍼먹고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참을수밖에 없다.
은심이 저 구석에서 울고 있고..짐승짓을 하려다 일행이 깨어나는 바람에 망신만 당한 집주인놈이 곱게 먹으라고 할지도 모르기때문이다.
" 그런데..이 놈은 그러구 어디갔지? "
금혁이 아빠는 딱히 더이상 은심이를 달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말머리를 돌린다.
괘씸한 생각 같아서는 그놈이 오기전에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고 싶지만 이 깊은 산중에...그것도 이 야밤에 어디 갈곳도 없다.
거기에다 다 익은 흰쌀밥 냄새가 코구멍으로 타고 들어와 온몸을 짓누른다.
그때였다.
" 타,타,타~다~당." 하고 산골짜기 떠나갈듯 요란한 트랙터 시동거는 소리가 울린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쪽을 쳐다보았다.
" 이게 뭔 소리야? "
금혁이아빠도 놀란 표정으로 흠칫하더니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무릎 끓고 앉아 언니의 등을 다독여주던 은별이도 창문가로 다가와 소리나는쪽을 내다보았다.
셋이 그러거나 말거나 은심이는 그냥 까투리처럼 세운 무릎사이로 얼굴을 박은채 코를 풀~쩍 거리며 어께를 들먹이고 있다.
좀 있어 멀리서 " 우~룽, 우~룽 "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전조등 불빛이 두,세번 우리가 있는 귀틀집쪽으로 비추더니 당장 뭔가를 집어삼킬듯이 달려오는 악마와같이 퉁~탕 소리를 내고 진동을 울리며 이쪽을 향해 오는것이다.
( 저, 저런 미친놈, 은심이한테 그런 몹쓸짓 해놓구 씽~해서 나가더니...이 야밤에 어딜 가려는거지?)
나는 혹시 화가 난 주인놈이 밥도 안 먹이고 트랙터 적재함에 우릴 다 태우고 공안에 끌고 가려는게 아니가 하고 더~럭 겁부터 났다.
소리가 점 점 가까워 지더니 이윽고 아래,위 각각 두개씩 달린 전조등 불빛이 대낯같이 밝게 비추며 귀틀집을 십여미터 길에 멈추는 것이였다.
우리는 마치 죄 지은 사람들처럼 어쩔줄 몰라 언능 창가에서 물러나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 야, 주인새끼 오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은심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는 미동도 없다.
아니나다를가 뿌~득, 뿌~득 눈 밟는 소리와 개들의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출입문이 열리며 갈색 토끼털 모자를 내려써서 더 험상궂고 짐승같이 생긴 주인놈이 들어섰다.
" 흐~~음."
그는 탄식인지 한숨인지 알수없는 코 소리를 내면서 방안에 쪼그리고 앉아들 있는 일행을 일그러진 인상에 눈에 독기를 품고 한참 쳐다보는것이였다.
나는 그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잠깐 쳐다보고는 너무나 험상궂은 인상에 기가눌려 감히 마주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부엌에 서서 우리를 노려보던 그는 또 한번 "흐~음." 하고 코김을 내뿜더니 갑자기 드~르륵, 하고 밥가마 뚜껑을 연다.
( 엉? ~ 저놈이 지가 한짓이 미안해서 밥이라도 먹으라고 주려는건가? 흥, 그래도 양심은 있나보네,)
나는 며칠동안이나 산속을 헤메이며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어린 여자애를 건드리려고 한게 조금이나마 미안했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가마뚜껑을 열어놓은채로 다시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아까 들어올때 보았던 개집 옆의 큰 양철버킷을 들고 들어오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열어놓은 밥가마 옆에 탕~하고 내려놓는것이다.
우리는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 저 놈, 뭐하는거지? 설마...? )
나는 다 익은 흰쌀밥을 개밥 담는 통에 담아서 우리한테 주려고 하는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가...정말로 그는 밥주걱을 찾아들고 가마안의 밥을 몇번 신경질적으로 휘젖더니 푹~푹 퍼서 들고 들어왔던 통안에 담는것이다.
그리고는 마지막 밥알 한알도 붙어있을세라 박~박 긁어 퍼담는것이다.
그걸 보고있느라니 배속에 요정이라도 있는듯 내장을 들춰대며 연거퍼 꼬르륵~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주인놈이 하염없이 쳐다보는 우리를 힐끔 올려다 보며 하는 말.
" 이 밥 못먹소.돌이랑 모래 있어서..이건 가지구 내려가서 짐승이나 주고 마을에서 다른 쌀 가져다가 밥 다시 지어야되오."
(에~엥? 뭔 개소리야.)
" 내 마을 내려갔다올때까지 집에있소. 어디 나가지 말구~ 여기 산속이라두 산림경찰이랑 자주 왔다갔다하오. 바테리도 아껴야 되니까 불 끄고 가만히 있소."
그러더니 버킷에 찬장옆에 두었던 묵직해보이는 비닐 봉지를 밥위에 그대로 털~썩 얹어놓더니 그대로 또 나가버리는것이다.
아마도 아까 차고에서 가지고 내려왔던 돼지고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주인놈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것이다.
그놈의 푸르딩딩한 낯을 보니 모래섞인 밥이라도 괜찮으니 주고가면 안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기어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