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루푸스 때문인 줄 나는 몰랐지요

by 누리

19년 인생 동안 내가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었던 적은 없다. 앞으로도 쭉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넉넉하고 단란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가 어릴 때는 돈이 없어 여기저기 전전하며 상당히 고생했다고 들었지만, 6살 무렵의 마지막 이사 이후로 우리 집안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 모두 안정된 직장이 있었고, 나와 동생은 둘 다 조용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춘기를 보냈고 남매들이 으레 그러듯 자주 투닥거렸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내가 철이 든 이후 우리 집안은 늘 평안하고 안락했다.


내 인생은 내가 나로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설계되어 있었다. 이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인서울 대학교는 들어갈 수 있었고, 얌전히 대학 생활을 하고 나면 남들 하는 만큼 방황하다 취업을 할 것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고 점차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겠지. 대학생이 되면 가게 될 선교사업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그렇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루푸스 진단은 내 평탄한 삶에 투하된 핵폭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고3이었다. 고3이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3이 의미하는 바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이제 1년만 공부에 올인하면 20살이 되고, 그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랑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렇게 자유를 즐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올해만 고생해야지. 그랬는데.


1월 1일부터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은 방학 첫날이었고, 그다음 주부터 나는 윈터스쿨을 다닐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새해 첫날 시작된 미열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지속됐다. 감기나 독감이라기에는 미열 외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열이 나나 했다. 특히 방학이라고 고3인 주제에 새해 첫날부터 핸드폰만 하며 핑핑 논 딸내미를 본 엄마는 그 가설을 굳게 믿었다. 솔직히 나도 내심 동의했다. 놀고 싶었고 공부는 하기 싫었다. 내 몸이 그런 마음을 아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이 이주가 되고, 이주가 삼주가 되자 엄마는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미열을 달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할 만했다. 힘들긴 했지만 약을 먹으면 얼추 살 만했고, 무엇보다도 미열을 핑계로 윈터스쿨을 종종 빼먹을 수 있는 게 제일 좋았다. 그냥 철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수는 없어 조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소아 청소년과로 갔다. 피검사와 소변검사, 독감 검사, 결핵검사, 백혈병검사, PCR까지 야무지게 다 했는데도 아무것도 안 나왔다. 결국 자가면역질환 검사까지 했는데, 결과는 2주 후에 나온다고 해서 결국 타이레놀과 소론도만 처방받았다. 자가면역질환이 뭔지 나는 몰랐고, 의사 선생님도 이건 정말 혹시나 해서 그냥 해보는 검사라며 아마 미열은 자연적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날이 1월 20일이었다.


소론도는 좋은 약이었다. 소론도를 처방받기 전에 쓰던 타이레놀은 먹어도 37도까지 밖에 열이 내리지 않았는데, 소론도를 먹기 시작하고는 36도가 유지 됐다. 이제 끝인가 보다,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약을 그만 먹어 버렸다.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건 금방 드러났다. 1월 28일,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한파로 눈이 쌓였다는 소식에 할머니댁까지 고속도로로 최소 3시간이 걸리는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친가를 가느니 마느니 고민하다 결국 오전 늦게 집을 나섰다. 그날 아침부터 묘하게 몸이 좋지 않던 나는 약을 챙겨갈까 엄마한테 물었지만,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설마 열이 오르겠거니 싶어 그냥 집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열이 난 지 일주일이 넘었기 때문에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괜찮지 않았다. 안 괜찮아 버렸다. 점심을 먹고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해 38도가 넘어 버렸다. 3시간을 달려 친가에 도착한 우리는 3시간 후에 다시 3시간을 달려 응급실을 다녀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외가에 들르지 못해 용돈이 반토막 났다는 동생의 징징거림이 그렇게 짜증 나던 것이 기억난다. 나랑 두 살 차이인 동생은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고, 손이 귀한 우리 집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해는 명절 용돈이 말 그대로 쏟아져내리는 은혜로운 해였다. 게다가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비싼 브랜드의 가방과 패딩까지 받았으니 자기도 그러겠거니, 내심 기대하고 있었을 녀석이 불쌍하기는 했다. 그래도 누나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고 있는 길에 저딴 소리가 나오나 싶어 녀석이 얄미웠다.


명절을 거나하게 치르고 2월 4일, 자가면역질환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가 이상해 재검을 들어갔다. 류마티스내과로 과를 옮겼다. 엄마의 불안은 절정에 달했지만, 나는 역시 별 생각이 없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가족들한테 짜증이 났고 그냥 얼른 개학해서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었다. 특히 열이 난다고 건강식만 올라오는 식탁이 불만이었다. 우리 학교는 삼시세끼 마라탕, 떡볶이, 치킨, 각종 고기와 빵을 비롯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음식들이 그득그득 올라오는 은혜로운 급식 맛집이었다. 우리 엄마는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각종 인스턴트와 자극적인 음식은 식단에서 아예 빼버리시는데, 그게 싫었다. 떡볶이와 마라탕,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서 일부러 도시락을 안 먹고 편의점에 간 날도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것부터 이상했다. 나는 원래 밥을 잘 먹는다. 편식도 거의 하지 않고,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일단 끼니때가 되면 무엇을 주던 맛있게 잘 먹는다. 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나는 이유식 시작할 때 빼고 밥투정을 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입맛이 없었다. 밥 냄새가 싫어서 윈터스쿨에 다니는 내내 점심은 삶은 감자나 고구마 하나에 블루베리로 끝냈고, 저녁도 꾸역꾸역 겨우 먹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체중이 불었다. 먹는 양이 늘기는커녕 줄었는데도 한 달 만에 6킬로가 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살이 찐 게 아니라 부은 거였다. 그렇지만 그때는 집에 와서 마음이 편하니까 살이 찌나, 그랬다.


그래, 이것도 이상했다. 학교에서보다 마음이 편한 건 맞는데 자꾸 짜증이 났다. 학교에서 계속 예민한 상태로 있던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짜증이었다. 일단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잠이 늘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윈터스쿨을 갔다가 하루 종일 졸다만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창 집중해야 할 시기에 이러는 내가 너무 싫었고, 자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달고 살았다. 정말 간절하게 자퇴가 하고 싶은 한편 집이 갑갑해 기숙사로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엄마는 우울증을 의심했고, 나는 무기력증을 의심했다. 심리상담까지 예약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그냥 오랜만에 가족들하고 붙어 있어서 짜증이 나는 거라고, 고3이라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짜증 속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동안 그래도 나는 윈터스쿨을 꾸역꾸역 나가고, 생기부 마감을 위해 학교를 다녀왔다. 지금 생각하면 용하다. 학교가 타지에 있어서 생기부 점검은 30분 만에 끝났는데도 버스 타랴 기다리랴 하루를 날렸지만 혼자 하루를 보내는 게 오랜만이라 오래간만에 즐거웠다. 그리고 그때는 그날이 학교 친구들을 본 마지막 날이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우왕좌왕 방학을 보내고 2월 말, 드디어 기다리던 개학이 다가왔을 무렵. 망할,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