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푸스 진단을 받았습니다
루푸스 진단을 받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류마티스내과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대기실에는 소아 청소년과 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인원이 아침부터 바글거렸다. 그 많은 사람들 중 20대 이하로 보이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그렇지, 보통 내 나이에 관절염을 걱정하지는 않지…
대기실에서 30분쯤 기다렸을까. 내 이름이 불렸다. 엄마랑 둘이 나란히 방 안으로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분주해 보여 조금 기다려야겠구나 싶었다. 근데 아니었다. 막, 막 뭐라고 간호사와 신명 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안경을 쓱 추켜올리시더니 나를 휙 뒤돌아보고는, ‘야 00아, 어쩌나, 너 루푸스다!‘ 진짜 딱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엄마는 막 울었다. 네? 뭐라고요? 루푸스요? 아니 그거 아닐 거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전에 그게 뭔데요.
혼란스러웠다. 정말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진단을 받은 것은 류마티스내과로 옮기고 두 번째 진료 때였다. 처음 소아 청소년과에서 검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류마티스내과로 가보라고 해서 과를 옮기고 첫 번째 진료를 받던 날, 류마티스내과 대기실로 소아 청소년과 선생님이 나를 직접 찾아오셨었다. 엄마가 너무 불안해하는 것을 보시고 신경이 쓰이셨는지, 자가면역 질환일 가능성은 매우 낮고 그냥 혹시나 해서 옮겨 보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시려 직접 걸음 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설마 루푸스일 것이라고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푸스가 어떤 병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일절 찾아보지 않았다. 옆에서 부모님만 혹시나, 혹시나 하며 찔끔찔끔 알아보는 것을 찔끔찔끔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진단을 받고도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증상이 거의 없었던 탓이 컸다. 그냥 많이 피곤하고 열이 나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약만 먹으면 되겠지 싶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약? 그냥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날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산정특례였다. 산정특례란 중증 질환이나 희귀·중증난치 질환 환자들에게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고마운 제도로, 내 경우에는 의료비에 10%만 내면 됐다. 방학 내내 나간 진료비가 100만 원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내심 진료비가 신경 쓰이던 나에게는 너무 좋은 소식이었다. 내가 희귀성 난치병 환자로 분류된다는 것이 우습기는 했다.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주일 남은 윈터스쿨을 끊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사실 방학 내내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미쳐버리겠는 곳이 학원이다. 내가 다닌 윈터스쿨은 벽부터 책상까지 온통 새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어 앉아 있다 보면 정신병이 생길 것 같았다. 게다가 졸면 안 된다고 히터도 세게 틀어주지 않아 내내 미열이 나던 나에게 교실은 너무너무 추웠다. 공부를 하다가 미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몸이 막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는데, 조금 있으면 열이 따끈따끈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그냥 열에 몸을 맡기고 끔뻑끔뻑 졸면서 쉬는 시간 종이 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돈이 너무 아깝다. 윈터스쿨비만 200만 원이었는데,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다. 윈터스쿨만 안 갔으면 루푸스가 그렇게 빨리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 아빠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 한양대 병원 진료 신청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바로 다음날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하면, 원래 한양대 병원은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진료를 보기 위해 심하면 1년 가까이 대기를 타야 한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들여다본 대기 순번 중 다음날 자리가 하나 비었고, 아빠가 그걸 냉큼 가로챈 것이었다. 다음날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가 기록을 보고 깜짝 놀라서 도대체 어떻게 예약을 한 거냐고 물었다. 문제는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오늘 당장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연락을 한 것은 고속버스 막차 시간 1시간 전이었다. 급하게 짐을 싸고 버스표를 끊었다.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에 도착해 이모할머니댁으로 갔다. (우리 부모님은 주말부부 3년 차로, 아빠는 서울에 있는 이모할머니 없는 이모할머니댁에서 이종외삼촌, 그러니까 엄마의 사촌 남동생과 살고 있었다. 집은 이모할머니 집이지만 정작 이모할머니는 지리산 산속에 들어가 사시는 중이시다….)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한양대를 가는 길에 나는 죽을 뻔했다. 러시아워에 서울 한복판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는 일은 환자가 할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양대에 도착해 진료까지 야무지게 받았다. 한양대 간호사들은 지방 간호사들보다 피를 잘 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혈관이 얇아서 피를 뽑을 때 간호사들이 다들 힘들어했는데, 여기서는 한 번에 쑥 뽑아줘서 고마웠다.
진료는 금방 끝났다. 검사 결과는 이주 후에 나온다고 했다. 이주 후면 이미 개학을 이미 한 시점이었다. 나는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우리 학교는 타지에 있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기숙사에 있다가 서울로 가기에는 내 체력이 심히 걱정되었다. 그냥 한주만 쉬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공부 욕심이 있었고, 학기 초반에 나오는 안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3학년으로 올라가며 교사 교체가 많이 일어난 터라 학기 초 수업을 놓치는 것은 내신 대비에 꽤 치명적이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반대를 이길 수 없었다…. 반배정이 잘 걸려서 친구 걱정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내가 지금까지 걸려본 반배정 중에 가장 잘 나온 편성표였다. 나는 올해 학교 생활을 꽤 기대하는 중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2주 간에 휴가를 얻었다. 방학 마지막 한 주, 개학하고 한 주. 그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엄마의 엄명을 받았다. 나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잤다. 10시에 자기 시작해 10시에 일어났고, 점심을 먹고 또 서너 시간을 잤다. 그러니까 하루가 갔다. 2주를 거의 내내 그렇게 보냈다. 부모님은 도대체 윈터스쿨은 어떻게 다닌거냐며 경악했다. 나도 경악했다. 사람이 이렇게 잘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때부터 슬슬 내 몸이 이상하긴 했구나, 깨달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대충 넘겼던 불편함들이 루푸스 증상이었음이 속속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피로와 우울감은 기본이었고 체중 증가인 줄 알았던 것은 붓기였다. 햇빛을 쬐면 달아오르는 뺨은 홍반 때문이었고 소변에서 보이는 거품은 단백뇨였다. 나는 일단 내가 살이 찐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뻤다. 그냥 웃겼다. 나 환자네. 그냥 그 정도.
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 루푸스에 운동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온 부모님은 나를 밖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산책이라도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그건 악(惡)수였다. 루푸스 환자에게는 운동보다는 휴식이 먼저다… 에너지를 늘 아껴두어야 겨우 사는 게 루푸스 환자다. 그때 나에게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는 0이었다. 거기서 운동을 하는 것은 그냥 증상더러 악화되라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짓이었다. 그놈의 운동은 삼일절에 절정을 찍었다. 이제 공부 안 해도 되겠다, 놀러나 가자는 아빠의 주장에 따라 우리 가족은 경주로 나들이를 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기숙사에 들어간 동생은 제외됐다. 생각해 보면 그 나들이는 처음부터 삐걱댔다. 일단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눈까지 왔다. 차도 좀 이상했다. 카센터까지 갔지만 우리 가족은 괜찮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에 충족되어 나들이를 강행했다. 우산은 하나밖에 없었다. 미술관을 갔다. 평지에 있을 줄 알았던 미술관은 언덕 위에 있었다. 언덕을 오르다가 나는 지옥을 보았다. 비, 눈, 바람에 온통 춥고 축축하고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아무튼 힘들었다. 미술관은 좋아하지만, 그날 본 그림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뭘 보긴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엄마와 둘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루푸스는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근데 생각보다 단백뇨 수치가 너무 올라갔단다. 그래서 음, 입원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