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할 것인가
네이버 지식백과에 루푸스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루푸스의 정확한 이름은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이며, 주로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가면역이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루푸스는 만성적인 경과를 거치며 시간에 따라 증상의 악화와 완화가 반복된다. “
쉽게 말하면 자가면역질환이란 면역계가 맛이 가서 자기 세포를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루푸스는 그중 한 가지 질환인 것이다. 따라서 루푸스 치료는 인위적으로 면역력을 낮추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스테로이드와 마이렙트, 할록신 등이 핵심 치료제로, 트리테이스, 판토록, 셉트린, 비타민D 등이 보조 치료제로 사용되는 게 보통이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안내받는 약물들이 많아 정말 헷갈렸는데,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환우들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약물들을 정리해 보았다.
스테로이드: 염증 억제와 빠른 증상 완화
마이렙트: 자가면역 반응 억제
할록신: 염증 조절, 혈전 예방
트리테이스: 신장보호, 고혈압 관리
판토록: 위장 보호(스테로이드 부작용 예방)
셉트린: 면역억제 치료 중 감염 예방
비타민D: 광과민성 증후군으로 부족해지는 비타민 보충
고지혈증 약: 루푸스 환자에서 흔한 고지혈증 및 심혈관질환 예방
대충 이렇게가 기본적인 약물들이고 증상에 중증도에 따라 스테로이드 용량을 중심으로 약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루푸스 환우들은 보통 스테로이드를 완전히 끊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단백뇨가 거의 사라지고 6개월에서 1년 이상 관해기가 유지되면 가능하다고들 한다. 관해기란 루푸스 증상이 거의 없는 시기를 말한다. 루푸스는 난치병이기에 완치의 개념은 없지만, 관해기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관리만 잘하면 10년, 20년 넘게 관해기가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교수님은 3개월에서 6개월 이내에 단백뇨 수치를 정상으로 돌리고 관해기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 내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콩팥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입원이 필요했다. 단백뇨 정상 수치가 150인데, 나는 3000이 넘었다. 루푸스 신염일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았다. 여기서 루푸스 신염은 또 무엇이냐. 그냥 말 그대로 루푸스가 신장까지 침범했다는 이야기다. 이때부터 나는 드디어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심하면 평생 투석까지 해야 한다고 하는데 무섭지 않으면 이상한 게 아닐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입원을 했다. 설마 입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왔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병원 편의점에서 급하게 슬리퍼와 세면도구를 사고 담임 선생님께 학교를 며칠 더 못 갈 것 같다고 연락을 드렸다. 나는 4인실에 입원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병실에 들어와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나는 넓은 방에 침대가 좌르륵 늘어서 있고 끝쪽에 티브이가 달린 광경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병실은 개인공간을 존중했다. 일단 커튼이 있었고 티브이는 없었다. 대신 사물함이 있었다. 화장실도 작게 딸려 있었다. 침대마다 손 소독제는 딸려 있는데 화장실에 손 세정제는 없는 것이 이상했다. 엄마는 내 침대 옆에 보조 침대를 폈다.
루푸스 신염은 중증도에 따라 총 5단계로 분류된다. 엄마와 논의를 시작했다. 2, 3 기면 학교를 다니자. 4, 5 기면 휴학을 하자. 진짜로 무서웠다. 설마 휴학을 진짜로 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 물론 자퇴 노래를 부르고 살긴 했지만 그건 그냥 투정이었다. 공부가 너무 힘드니까. 고3은 너무 힘드니까. 그렇지만 나는 우리 학교를 좋아했다. 작은 학교였다. 그렇지만 중학교 3년 내내 준비해서 붙은 학교였고, 내성적이고 대인관계에 서투른 내가 어렵고 어렵게 정을 붙여낸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2년 내내 성적 관리도 열심히 했고 생기부도 정말 알차게 채워 냈다. 교정이 아름답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학교였다. 기숙사에서는 사감 선생님 몰래 과자파티를 열었고 시험기간에는 룸메들과 밤샘 공부를 했다. 시험기간에는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많이 싸웠고 많이 울었다. 굳이 따지자면 힘든 일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추억이 그득그득 담겨 있는 우리 학교였다. 늘 누군가 시키는 대로 멍하니 해나가던 내가 소소하게나마 처음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고 이뤄낸 곳이었다. 웬만하면 휴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조직 검사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그냥 허리에 마취를 하고 바늘이 쑥 들어왔다 나가니 끝나 있었다. 힘든 것은 조직 검사가 끝난 뒤부터였다. 조직검사를 한 부위가 침대에 닿도록 비스듬히 누운 채고 6시간 동안 꼼짝도 하면 안 됐다. 금식도 해야 했는데 나는 조직검사 전날부터 이미 금식 중이었다. 16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셨다. 다리가 미친 듯이 저렸고, 엉덩이 살이 깔려서 아팠다. 똑바로 누운 것도 아니고 옆으로 누운 것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는 핸드폰도 못했다. 그 자세로는 라디오도 힘들어서 1시간 이상은 못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그런데 4시간쯤 지났을까.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지혈팩이 붙어 있는 곳이 내가 지혈하고 있는 부위보다 위쪽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슬그머니 자세를 바꿨다. 살 것 같았다. 나는 4시간 동안 참은 저림은 무엇을 위한 고통이었을까. 그래도 지혈은 잘돼서 새로 수술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첫 4시간의 실수는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쪽팔려서.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왔다. 4기였다. 받아들였다.
그 일주일 동안 내 기분은 오르락내리락 난리를 쳤다. 싱숭생숭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갈피가 안 잡혔다. 우울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휴학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지만, 처음의 충격이 가신 이후부터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랫동안 원해온 일이었다. 공부 부담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가는 것.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것. 누군가와 억지로 관계를 만들 필요 없이 계절에 따라 흘러가듯 사는 것.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원하는 만큼 잠을 자는 것. 휴학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미루어 두었던 단지증 치료와 교정도 할 수 있었고, 수능도 몸만 안정이 되면 더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은근히 4기이길 바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몸으로 수험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하루 종일 일기장에 휴학하면 할 일 목록을 끄적여 댔다. 결과적으로 진짜 4기였으니 이걸 잘된 일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사이에 무서운 일도 있었다. 입원하고부터는 매일같이 새벽 5시부터 체중을 제고 소변 검사와 피검사를 해야 했다. 그게 끝나면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왔고 혈압, 혈당, 체온은 수시로 체크했다. 그러는 사이사이에 가래 검사도 있었다. 산정특례와 보험이 아니었으면 진료비가 어마무시하게 나왔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찍은 엑스레이 중에 폐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왔다고 해서 폐 세척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교수님과 간호사가 정답게 사담을 나누며 수술을 준비했다. 교수님이 매우 친절하셨다. 나같이 어린 학생이 수술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내가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몇 번이고 안심시켜 주셨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엄마한테 직접 설명까지 하러 오셨다고 한다. 수술은 힘들지 않았다. 마취가 제일 아팠다. 팔에 주사를 놓지 마 자 한 3초 후에 그냥 쓱 잠들어 버렸다. 뭔가 되게 아프고 힘들 걸 한 것 같은데 기억에 없다. 그냥 눈을 뜨니 끝나 있었는데,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취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 아닐까. 이게 아니었으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무섭다.
그런데 결과가 좀 황당했다. 폐 세척술은 기관지경을 통해 폐의 세척액을 회수하여 폐 내부의 상태를 진단하는 검사 방법이다. 그래서 원래는 그 세척액을 검사해서 엑스레이에 찍힌 게 무엇인지 확인할 예정이었는데, 폐를 보니 피가 차 있었다고 한다. 피가… 피가 차 있었다. 엑스레이에 찍힌 것은 피였다. 좀 많이 충격적이었다. 이때 제대로 깨달았다. 나 학교 가면 안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