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푸스보다 무서운 것은 루푸스로 인한 감염이었다.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입원 기간은 세척술 이후 한주가 더 늘어나 버렸다. 이때는 몰랐다. 이주가 삼주가 되고, 삼주가 사주가 되고, 결국 5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병원 밖을 나가게 될 줄은. 입원 기간 내내 폐가 말썽이었다. 병원에서 보낸 5주 동안 나는 폐렴을 3번 앓았다. 사람의 몸 안에는 원래 자연적인 폐렴균이 있는데, 일반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면역억제제를 쓰게 되면 활성화가 진행돼 폐렴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처음 두 번의 폐렴은 별거 없었다. 그냥 숨을 깊이 쉬는 게 좀 어려웠을 뿐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폐렴은 정말… 다시는 생각도 하기 싫다. 그렇게 아파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왼쪽 갈비뼈가 조금 쑤셔왔다. 허리가 아픈 것은 원래 , 자주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쭈그려 앉아 있어서 그러나, 내일부터는 스트레칭도 좀 해야지,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통증은 계속됐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져서 누우면 허리가 끊어져 버릴 것 같았고, 식은땀이 줄줄 났다. 그래도 항생제를 맞고 나니 저녁쯤 되자 살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넘어갈 줄 알았다.
진짜는 그때부터였다. 그날은 하루 종일 이상하게 속이 좋지 않았는데, 항생제를 맞기 시작하면서 속이 더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저녁에 토를 했다. 나는 태어나서 토를 딱 두 번 해봤다. 초등학생 시절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을 때와 그날, 이렇게 두 번.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4일간 내내 토를 해댔다. 첫날밤이 제일 힘들었다. 새벽 늦게까지 한 30분 간격으로 토를 했는데 나중에는 더 토할 게 없어 위액과 피를 토했다. 냄새가 고약했다. 죽고 싶을 만큼 아팠다. 내가 그날 진정할 수 있었던 것은 죽염 덕분이었다. 무서워서 기도하던 엄마는 문득 가방 안에 처박혀 있던 죽염을 떠올렸다. 하나님의 영감이었다. 우리 엄마는 소금 신자다. 아침마다 소금물 한잔씩을 마시고, 죽염을 작은 통에 담아 들고 다닌다. 소금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만병통치약이라나. 죽염은 기본이고 히말라야 핑크솔트, 말돈 소금, 천일염, 적염, 암염 등 우리 집 찬장에는 온갖 소금들이 구비되어 있다. 솔직히 나는 별로 믿지 않았다. 좀 사기 같았다. 그런데 죽염 몇 알을 입에 물고 빠니까 정말 속이 좀 가라앉기 시작했다. 옆으로 웅크리고 누우면 속이 좀 진정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문제는 항진균제였다. 나와 상성이 잘 안 맞았다. 항생제와 항진균제를 6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4번씩 맞아야 했는데, 항생제는 용량이 적어 견딜 만했지만 항진균제는 너무 많았다. 수액이 들어오기만 하면 겨우 진정되었던 속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한 번 토를 한 이후부터는 후각이 미친 듯이 예민해져서 온갖 냄새가 다 자극이 되었다. 사람한테서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냉장고 냄새가 제일 이상해서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마스크를 껴야 했다. 그런데 그 악몽 같았던 밤 다음날 점심에 옆자리 보호자가 튀김우동 먹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피신했다가 현타가 왔다. 매끼 하루에 3번씩 음식 냄새가 빠질 때까지 화장실에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2인실로 방을 옮겼다. 2인실이었지만 환자는 나뿐이었기 때문에 2인실 같은 1인실, 1인실 같은 2인실이었다. 2인실은 2배로 비쌌다. 그래도 2인실에는 티브이가 있었다.
음식은 입에 댈 생각도 못했다. 4일 동안 포카리 스웨터와 소금 약간만 먹고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포카리 스웨터에는 자몽이 함유되어 있다. 루푸스 환자의 약 중에는 자몽을 먹으면 좋지 못한 것들이 많다. 고작 몇 퍼센트겠지만, 그래도 역시 지금 생각하면 찝찝하다. 그냥 물이나 마실걸 그랬나 싶다.) 영양제를 맞아서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영양제, 해열제, 항생제, 항진균제가 동시에 들어가느라 나는 양쪽 팔은 수액줄로 뒤덮였다. 일어나기만 하면 토를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결국 소변도 침대에서 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항진균제는 원래 1시간 안에 다 맞아야 했지만, 그 속도로 들어갔다간 첫날 밤의 그 사달이 일어나리라는 걸 우리는 직감했다. 엄마는 현란한 말솜씨로 1시간을 6시간으로 늘렸다. 한 3시간에 한 번만 토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주일을 더 맞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교수님이 타협안을 제시하셨다. 항진균제는 곰팡이균 가능성 때문에 맞는 것이었다. ‘가능성’ 때문이니 과감하게 끊어 보자는 것이었다. 뭐 다시 아프면 다시 맞으면 되니까. 두 손 들고 반겼다. 곰팡이균이고 뭐고 나는 당장 토하는 게 제일 무서웠다.
다행히 항진균제를 끊고도 갈비뼈가 다시 아프지는 않았다. 4일쯤 지나자 슬슬 살만해졌다. 과일과 누룽지 정도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감염은 절대절대 되지 말자고 결심했다. 루푸스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그때 처음 해봤다. 엄밀히 말하면 루푸스보다 루푸스로 인한 감염이 무서웠다. 조심조심 살아야겠다. 무리하지 말고 조심히, 얌전히 살아야 오래 살겠구나. 그런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