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방 할머니

옆방 할머니는 진상 환자였다

by 누리


2인실로 방을 옮기기 전, 처음 있었던 4인실에서 내 옆자리 환자는 상당히 특이한 할머니셨다. 공교롭게도 침대와 침대 사이에 쳐진 얇은 커튼 한 장에는 방음 효과가 전혀 없었다. 본의 아니게 3주 동안 옆자리를 지키며 나는 이 할머니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둔 사이로 지내는 것은 상당히 험난한 일이었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당뇨로 말도 못 하셔서 그냥 중환자신가 보다, 했는데 문제는 조금 회복이 된 후부터 시작되었다.


옆방 할머니는 진상 환자였다.


일단 이분은 회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당뇨로 입원한 건데 먹고 싶은 것만 찾았다. 새벽 4시부터 옆에 간이침대에서 웅크려 자는 아들을 깨워 무언가가 먹고 싶다며 사 오라고 내보낸다. 하루는 또 칼국수를 사 오라고 오밤중에 아들을 내보냈는데, 30분쯤 지나자 갑자기 간호사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간호사가 다급히 달려가자 아들더러 전화를 걸어달란다. 그렇게 전화를 연결해서 하는 말이, ‘저, 그, 냉면도 좀 사와라 냉면.’ 전화 너머의 아들은 황당한 모양이었다. 나도 황당했다. 칼국수, 냉면, 햄버거,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족발, 식혜, 수박, 만두. 그날 그 할머니가 아들을 내보내 사 온 음식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족발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게다가 이가 없으신 건지 한 번 식사를 시작하면 3시간은 기본으로 음식을 드시는데, 그동안 입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쭈압쭈압쭈압…. 고통스러웠다.


이 쭈압쭈압 소리는 식사 시간에만 나는 게 아니었다. 잠꼬대도 이 소리로 하셨다. 나도 힘들었지만, 엄마는 더 힘들어했다. 간이침대는 커튼과 맡닿아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할머니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꼭 붙어 있는 꼴이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꼭, 굳이, 하필 커튼 쪽을 바라보는 자세로 잠을 잤다. 할머니가 잠꼬대를 하면 엄마 입장에서는 누가 귀에다 대고 입을 쩝쩝 다시는 것과 다름없었다. 2인실로 옮기기 전까지 우리는 새벽 내내 잠을 설쳐야 했다.


그리고 그놈의 식혜. 식혜를 얼마나 드시는지 모른다. 물은 안 드시면서 식혜만 엄청 드시는데, 그것 때문에 혈당이 엄청 오르셨다. 첫날 오셨을 때는 말도 못 하고 아무것도 못 드셔서 혈당이 60이었는데 며칠 있다가 300이었다. 식혜가 원인인 게 분명하다. 또 제대로 거동을 못하시니 음식을 자꾸 흘리시는 모양인데, 결국에는 식혜를 거하게 엎어 버리셨다. 커튼은 바닥까지는 분리해 주지 않는다. 식혜가 바닥을 타고 우리 쪽으로 줄줄 흘러넘쳐 들어왔다. 한밤중에 엎으신 건지 우리는 아침에 냄새를 맡고서야 알았다. 시큼한 냄새가 하도 나서 바닥을 보니 빈 식혜통이 옆자리 침대 밑을 나뒹굴고 있었다. 나와 엄마는 식혜가 싫어졌다. 한동안은 웬만하면 먹고 싶지 않다.


할머니를 간호하는 것은 둘째 아들이었다. 상시 거주하는 보호자는 둘째 아들이었고, 오후 몇 시간은 남편이 들어와서 간호를 했다. 첫째 아들은 일주일에 몇 번만 얼굴을 비추었다. 할머니의 여동생들도 가끔 왔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보호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는 꼭 할머니 혼자 있었다. 이 시간이 할머니는 불만인 듯했다. ‘모가지만 빳빳하게 세워 놓고 어딜 갔어!’하는 소리가 가끔 들려온다(아들이 나가기 전에 침대를 세워 놓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워어어언!’하고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아들한테 얼른 오라고 전화를 걸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힘도 없는데 간호사를 부르는 것보다 그냥 옆자리 커튼을 저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인 듯했다. 처음에는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저녁에 혼자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커튼이 흔들리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자니 옆방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나를 빠안히 쳐다만 보셨다. 뭐지 싶어 다가갔다. ‘하, 할머니? 왜 그러세요?’ 빨간 핸드폰을 내미셨다. ‘전화, 나 아들한테 전화 좀 걸어줘.’


그때부터 종종 커튼이 열렸다. 나는 그 커튼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옆자리에서 그걸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열지 말라고 달아 놓은 커튼 아니냐고. 하루는 죽 대신 밥이 먹고 싶으니 식당에 전화를 해 달라고 하셨다. 아니 할머니 식당 번호를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간호사님을 불러 드렸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왜 할머니는 콜벨을 누르지 않으셨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커튼을 저치는 것 보다 콜벨을 누르는 게 훨씬 편한데. 그냥 팔 하나만 뻗으면 눌리는데.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할머니가 유일하게 쪽을 못 쓰는 상대는 담당 교수님이셨다. 식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콧줄을 끼워 버리겠다고 위협한다. 자꾸 이러면 요양 병원 보내 버린다고 겁을 준다. 덕분에 이 할머니는 다른 사람한테는 온갖 앙탈을 다 부려도 교수님한테 만은 고분고분하다. 아니 그냥 교수님이 오는 것 같으면 자는 척을 해 버린다. 온 세상 사람들한테 반말을 쓰는데도 교수님한테만은 찍 소리도 못한다(그래도 존댓말은 못 하시겠는지 말을 얼버무리는 식을 슬슬 넘어간다.) 간호사님들은 교수님이 오시면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할머니의 가족은 할머니만 특이한 게 아니었다. 이 가족은 다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했다. 일단 둘째 아들은 장발남이었다.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그래서 첫인상은 좀 무서웠는데, 의외로 목소리는 엄청 스윗한 바리톤이다. 게다가 굉장한 효자다. 할머니가 하루 종일 앙탈을 부리는 데도 늘 순하게 수발을 든다. 간호사님한테는 늘 공손하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첫째 아들은 둘째와 완전 반대다. 깡마른 둘째와는 다르게 동글동글한 인상이다. 이쪽은 검은 비니에 연분홍 스웨터를 입고 나타나셨다. 성격은 건달 같다. 올 때마다 동생한테 사업이 어쩌니 돈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건들건들 늘어놓는다. 동생과 형이 양극단의 외모와 성격을 반반 섞어 놓은 느낌이다. 남편도 역시 특이했다. 이분은 MZ 스타일을 추구하시는 듯하다. 푸른색 과잠에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니신다. 머리는 염색 안 한 회색에 사각 안경을 쓴다. 공대생 느낌이 난다.


신기했던 건 가족 모두가 할머니를 헌신적으로 돌본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옆에서 지켜봤을 때 할머니는 무지막지했다. 하루종일 시켜 대는 음식 신부름은 기본이고 약 먹는 것도 수시로 거부한다. 늘 자잘한 일들을 내내 시켜 대는 데다 기본 모드가 짜증에 앙탈이다. 10년 동안 당뇨 환자로 지내느라 휠체어를 타고 거실과 안방만 오가는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그 10년 간 할머니는 늘 이런 상태였으리라. 그런데도 가족 중 누구도 할머니에게 화내거나 뭐라 하는 일이 없다. 늘 다정하게 할머니의 수발을 든다. 둘째 아들은 늘 순하게 심부름을 다녀오고, 남편은 올 때마다 할머니의 앙탈에도 즐거운 목소리로 몇 시간이고 대화를 이어 간다. 가끔 오는 첫째 아들도 장난스럽지만 다정한 태도로 어머니를 대한다. 할머니의 여동생들은 식혜를 포함한 직접 만든 반찬들을 수시로 보내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할머니를 그렇게 다정히 대한 것은 할머니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기 때문 아니었을까. 10년이라는 세월이 할머니를 변하게 했을 뿐 원래는 할머니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할머니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건, 할머니가 이전에 그만큼 가족들에게 큰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2인실로 옮긴 후에도 엄마는 병원 편의점에서 종종 둘째 아들을 마주쳤다고 했다. 필히 할머니의 음식 심부름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엄마가 환자가 된다면, 그래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지금의 온화함과 상냥함을 잃고 옆방 할머니와 같이 된다면, 그러면 나는 저 아들처럼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저렇게 헌신적으로 수발을 들 수 있을까. 엄마가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병원 생활을 하는 내내 휴가를 내고 간이침대에서 불편한 잠을 청하던 엄마, 새벽에 토하는 나를 부여잡고 달래던 엄마, 방학 내내 내가 열이 오를까 잠을 설치던 엄마.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 나는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리라. 조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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