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은 대단하다
입원하고 나서 새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병실은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맨 안쪽 침대까지도 데스크에서 나누는 말소리가 다 들린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가 이상이 생기면 바로 알아야 할 테니까.)
‘00아, 너 몇 개월 차지?’
‘3개월이요..’
‘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 소리였다.
한양대 병원은 간호사들을 1월에 뽑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아프더라도 새로 간호사들이 들어오는 시기에는 입원하지 않고 싶다. 병원에서 무서워해야 할 건 퉁명스럽거나 불친절한 간호사가 아니다. 진짜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간호사다. 뭐랄까, 환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견습본이 된 기분이다. 다들 벌벌 떨면서 업무를 보신다. 내가 입원한 층의 간호사 중 신입 간호사는 둘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베테랑 간호사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분들이 단독으로 맡는 업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신입 간호사들이 병실 커튼을 저칠 때마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간호사님은 나보다 더 무서워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혈관이 얇은 편이다. 어릴 적부터 신체검사를 할 때마다 주사 잡기가 어려워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입원하고부터는 매일 네다섯 통은 기본으로 피를 뽑아야 했다. 베테랑 간호사들을 금방금방 뽑아 갔지만 신입 간호사님들은 많이 애를 먹으셨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정맥 주사를 잡을 때였다. 채혈은 괜찮지만 정맥주사는 정말 싫다. 솔직히 정맥주사는 물리적으로 아픈 것보다 시각적으로 무서운 게 더 크다. 커다란 주삿바늘이 혈관을 타고 쑥 들어가는 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픈 것 보다도 소름이 끼친다. 바늘을 따라 피가 올라오는 걸 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린다. 그걸 두 번 세 번 하는 건 심리적으로 꽤 힘들다. 게다가 주삿바늘이 큰 탓에 정맥주사를 놓고 난 자리에 난 멍은 이삼주는 지워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루푸스 때문에 멍이 잘 드는데, 내 팔은 정맥주사 때문에 늘 멍자국이 빼곡했다.
나중에는 결국 간호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이 환자 주사 잡기 힘들다고. 한 3주째부터는 정맥주사를 잡을 때마다 정맥주사팀이 직접 오기 시작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정맥주사를 놓았던 간호사는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때 한 세 번인가 찔렀나. 찔리는 나도 찌르는 간호사님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정맥주사팀은 대단했다. 팔을 엄청난 손놀림으로 빙글빙글 더듬더니 혈관을 찾아서는 단번에 주사를 딱 놔준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빙빙 팔을 돌리는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씁, 씁 소리를 내시는 것이다. 아 이거 좀 어려울 것 같은데,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사를 놓는다. 덕분에 정맥주사팀이 내 주사를 담당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팔의 멍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존경스러웠다.
간호사는 극한 직업이다. 3교대 근무에 진상 환자들은 끊이질 않는다. 진상 환자들. 환자들이 병원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대상은 간호사다. 사실 환자들이 교수를 만나는 건 위급 상황이 아닌 이상 정해진 회진 시간뿐이다. 그들이 입는 흰색 가운에는 환자 본인의 생사 여부를 가르는 인물을 상징하는 무언의 권위가 서려 있다. 교수를 막 대하는 환자는 없다. 내 목숨줄을 잡고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히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간호사는 좀 다르다. 간호사는 늘 환자 곁에 있다. 팔을 뻗어 콜벨만 누르면 24시간 어느 때든지 달려오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간당간당한 목숨줄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저도 모르게 환자들은 교수보다는 간호사를 편히 대한다. 간병인이 할 일을 간호사에게 부탁하는 환자들도 많다. 이것이 큰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 환자들이 하는 요구는 대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게는 화장실까지 부축을 좀 해달라거나 하는 사소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일들이다. 문제는 그런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간호사라는 대상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입원 중에 참 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그들의 갑질도 많이 봤다. 한 달 사이에 병실 한 층에서 내가 본 진상 환자들만 다섯 손가락이 넘어간다. 그들의 공통된 요구는, 내가 지금 어디가 불편해 죽겠는데 이걸 어떻게든 처리해 달라고 무작정 요구한다는 것이다. 진단서였을까,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어떤 서류를 달라는 환자가 있었다. 간호사에게는 그 서류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연결은 해 줄 수 있지만 그쪽에서 뭐라 연락을 해 주기 저까지는 당장 그 서류를 뽑아서 줄 방도는 없다는 것이다. 환자는 계속 화를 냈다. 그런 사정은 모르겠고 어쨌거나 자기는 그 서류가 당장 필요하니까 얼른 내놓으라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어쨌든 간호사는 병원 소속이고, 그러니까 서류를 내놓으라고 일단 억지를 쓰면 병원 안에 권한이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직접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대상이니까 독촉을 할 수 있고, 그러니까 안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답답하니까 일단 화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비슷한 환자들이 참 많았다.
교수에게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위계질서가 어쩔 수 없이 성립되어 있고 마는 것이다.
더 울고 싶어지는 점은, 그렇다고 해서 마냥 환자를 비난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다.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도 보러 오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들의 진상짓은 죽기 전 두려움에 온몸에 촉각을 곤두세운 사람의 서글픈 몸부림이며 그 두려움을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하는 최후의 발악이다. 간호사들도 다른 환자들도 이를 알기에 그들을 마냥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환자는 다 아픈 사람이다. 아프기 때문에 환자다. 퇴원하기 일주일 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2인실에서 다시 4인실로 방을 옮겼었다. 자매가 두 침대에 나란히 입원해 있었다. 침대 사이에 쳐진 커튼을 젖혀 버리고 둘이서 밤새 수다를 떨었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기운이 없는데 잠까지 설치니 짜증이 몰려왔다. 다음날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자매 중 언니가 동생에게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고 한다. 곧 검사를 위해 언니 쪽이 먼저 병실을 떠났다. 나는 짜증을 내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병원은 참 이상한 곳이다. 몇 달 전까지는 그냥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의료진이 된 사람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환자들, 그리고 그 몸부림을 받아내는 간호사들까지. 병원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정말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허용된다. 요즘 우리나라 의료계가 난리다.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입원하던 중에 봤을 때 뭔가 조치가 필요해 보이기는 했다. 환자들의 아우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마냥 받아내기만 하는 건 너무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까 받아내야 하는 건 맞지만 받아내는 사람이 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정말 너무너무 고생하신다. 난리가 날 만하다. 아는 게 없는 나는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그저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잘 고쳐 주었으면, 하고 여기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