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

무얼 먹어야 아프지 않을까요

by 누리

처음 스테로이드를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붓기와 식용이었다. 온몸이 땡땡 부어서 한 달 만에 3킬로가 늘었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자제는 했지만, 대신 하루 종일 먹을 것 생각 밖에 못했다. 엽떡, 치킨, 피자, 마라탕, 라면, 치즈케이크, 짜장면, 탕수육, 햄버거, 삼겹살…. 먹고 싶은 음식이 너무 많아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추가를 해서 목록은 끝도 없이 길어졌다. 인스타 피드는 먹방 영상으로 꽉꽉 채워졌다. 하루 종일 뭐가 먹고 싶은지 떠올렸다. 사실 휴학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생각을 하기에는 기력이 달렸기 때문에 먹고 싶은 걸 상상하는 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다. 루푸스 환자인 이상 이제 그런 음식들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루푸스 신염 환자는 신장 기능이 떨어질 가증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늘 먹을 걸 조심해야 한다. 식단 조절을 전혀 하지 않고 살다가 결국 투석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나는 다행히 신장 기능에는 아직 이상이 없지만, 앞으로 죽을 때까지 루푸스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식단을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다. 사실 교수님은 당장 식단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마라탕, 떡볶이 정도로 자극적인 음식만 아니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지만, 퇴원을 하고 식단을 시작했을 때 몸이 달라지는 게 너무 확연하게 느껴졌다. 맞지 않는 음식에는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식단 하면 적어도 투석은 안 해도 되겠지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투석만큼은 절대절대 피하고 싶다.


사실 입원 생활이 끝날 무렵에는 병원밥이 너무 질려서 식단이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병원밥이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병원밥이 맛이 없다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처음에 조금 긴장했는데, 식단이 생각보다 알찼다. 매끼 다른 반찬과 생선, 고기가 꼬박꼬박 올라왔다. 문제는 이게 일주일 단위로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식밖에 안 나온다. 한식을 사랑하는 나이지만 삼시세끼 꼬박꼬박 한식만 5주 가까이 먹는 것은 무리였다. 한두 주 정도는 괜찮았지만 결국 질려 버렸다. 그만 먹고 싶었다. 식단을 하더라도 내가 먹고 싶은 걸 내 맘대로 해 먹고 싶었다.


밥에 반찬은 먹기 싫었고,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샌드위치가 제일 맛있었지만 곧 밀가루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음식은 먹어도 즉각 즉각 어디가 안 좋은 느낌이 없었는데 밀가루만큼은 먹고 나면 다음 말 온몸이 땡땡 부어올랐다. 퇴원하고 첫 주에는 샌드위치를 정말 많이 사 먹었다가 몸이 너무 부어서 빵을 쌀빵으로 바꿔 보았다. 붓기가 바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다른 건 몰라도 밀가루만큼 대 안 먹고 있다.


루푸스는 먹으면 안 되는 게 많다. 저염 저단백 저당이 기본이고 자극적인 음식은 무조건 피하는 게 안전하다. 밀가루도 유제품도 좋지 않다.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혈당이 올라 안된단다. 사실 인터넷에 찾아보다 보면 어떤 음식이 좋고 어떤 음식이 나쁜 건지 헷갈린다. 어떤 논문에서는 가짓과 채소가 나쁘다고 하는데, 또 다른 논문에서는 토마토를 익혀 먹으면 염증에 좋다고 하고 있다. 공통되게 좋다고 하는 음식은 베리류 정도가 끝인 것 같다. 루푸스 30년 차, 40년 차 환자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고작 7개월 차가 이렇게 결론을 내려 버리기는 뭐 하지만, 나름 이것저것 찾아보고 실험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는) 이렇다.


1. 밀가루는 피한다. 쌀빵을 애용해 보자.

2. 고기는 최대한 건강하게 채소와 함께 먹는다. 양념을 최소화한다. 굽거나 튀기기보다는 삶아서 먹는다.

3. 저염이 제일 중요하다. 외식과 인스턴트를 제한하면 반은 간다.

4. 과일을 포함한 단 음식은 식후 말고 식전에 먹을 것.

5. 소식이 기본이다. 스테로이드는 식욕을 증진시킨다. 내가 지금 입맛이 도는 게 배가 고파서인지 아니면 그냥 뭔가 먹고 싶은 건지 구분해야 한다.


나는 보통 아침에는 냉동 블루베리, 점심에는 토마토 스튜와 당근라페, 저녁에는 밥을 먹는다. 거의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때문에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처음에는 매끼마다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봤는데, 요리에는 효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는 일요일에만 대량생산하는 중이다. 매끼 다른 요리를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혼자 먹는 경우에는 더더욱. 삼시세끼 다른 음식이 나오던 급식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깨닫는 중이다. 아침은 블루베리 정도로 대충 때운다고 해도, 식단을 하면서 매끼 점심을 챙기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공 식품은 일단 무조건 피하기로 했기 때문에 다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일요일에 토마토 스튜와 당근라페를 왕창 만들어 놓고 일주일 내내 점심으로 먹으면 질리지도 않고 편해 아예 루틴으로 만들어 버렸다. 좀 토끼가 될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먹고 나면 몸도 가볍다. 물러져 가는 과일이 생기면 베이킹도 한다. 아몬드가루와 계란을 기본으로 하면 여기에 대충 아무 과일이나 때려 넣어도 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전에 바나나 빵이든 사과 빵이든 집에 있는 과일을 대강 썰어 넣어 전자레인지로 구워 놓고 간식으로 먹으면 행복하다. 채식 위주로 끼니를 해결하기 때문에 매일이 입 터짐과 의 싸움이다.


+<토마토 스튜>

재료: 토마토, 당근, 감자, 양파, 고기, 올리브 오일, 마늘, 셀러리, 월계수, 카레가루


1. 팬에 올리브 오일을 약간 두르고 양파와 셀러리, 마늘을 가볍게 볶아 준다.

2. 깍둑썰기 한 당근과 감자를 넣고 1분 정도 볶는다.

3. 반으로 자른 토마토와 고기, 월계수 잎을 넣고 감자가 익을 때까지 1시간 이상 중약불로 끓인다.

4. 토마토 껍질을 건져내고 카레가루와 소금, 올리브 오일로 간을 맞추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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