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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Feb 23. 2022

나르시시스트와 범법행위

흔히들 나르시시스트들이 사회에 위협적인 이유를 그들의 상대적으로 괜찮은 준법정신으로 꼽는다. 특별히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가 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도리어 탄탄대로를 걷는 경우들도 많다. 악성 나르시시스트 (Malignant Narcissism) 같은 부류들은 마피아나 사기 조직, 주가 조작 같은 전문적인 범죄로 빠질 확률이 있지만 수적으로는 드물다.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보이거나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판정을 받는 이들은 규율과 규칙을 꽤나 잘 지키기 때문에 적어도 문서상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비칠 수 있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지만 사회가 이미 만들어 놓은 법, 규칙에 대한 이론적인 학습력은 좋다. 대체로 단순하게 철창행인 범죄에 대해선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을 훔친다거나, 강도가 하는 무단 침입 같은 흉악 범죄들 말이다.


이들이 무감각한 것들은 주로 인간관계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는 행위, 그리고 빠르게 발전하는 인터넷(특히 소셜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애석하게도 나르시시스트들이 가정 안에서 오랜 기간 동안 배우자나 자녀한테 하는 정서적 학대는 그 파괴력에 비해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혼의 사유는 될진 모르겠지만 이는 딱히 법의 심판을 받는다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일단 이들이 하는 언어적 폭력은 모호한 점이 있어서 법적 증거로 효력이 없는 데다가 피해자는 단 한 번의 충격적인 언행보다는 지속되는 수만, 수십 번의 공격적인 언행으로 상처가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이들에게 벗어나서도 그들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고 한동안 사회의 정의에 대한 크나큰 의문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물리적 학대나 착취는 피해자로 있어 그나마 빨리 자각을 하고 벗어나 수사를 의뢰라도 할 수 있지만 매를 들지 않는 나르시시스트 같은 경우 피해자들은 자각을 하지 못한다면 평생 그 그늘 밑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서적 학대는 은은히 스며들기 때문에 피해자로서 자각하기가 힘들고 전반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물리적 폭력을 당한 자녀들은 독립이라기 보단 성인이 되자마자 준비 없이 도망 나오는 것에 더 가깝다.


*가정 내에서 모든 학대의 부류들은 다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학대는 어느 것보다 더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기 보단 여러 가지 학대들이 피해자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리고 법의 사각지대인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행위들. 되리어 나르시시스트들이 쇠고랑을 차는 확률은 이 분야에서 높아지지 않나 싶다.


명예훼손과 험담을 들여다보면 오프라인상에서 나르시시스트들은 이것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양분을 빨아먹는 상대는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이긴 하지만 대충 아는 사람을 상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투를 쏟아붓는 경우가 있다. 일단 그들이 어떤 특정 인물을 그들의 공급원, Supply로 삼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공감은 아예 삭제되어 버린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의 명예 실추, 내적 고통 이런 건 그냥 세상에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없는 이야기에 살을 더 붙여서 부풀려서 은근슬쩍 뿌리고 다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타깃으로 삼은 사람을 자기 손으로 남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끔 전락시켜야지만 자신만의 우월함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구조이다. 살면서 남의 흉을 안 보고 살 순 없기에 험담은 그냥 일반적인 습성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규모를 키우진 않는다.


나르시시스트들 같은 경우 남의 흉을 보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힘을 쏟고 자기 손을 뻗혀 정보가 전파되는 과정 자체를 통제하는 편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만나 한 사람 흉을 보거나 이간질을 한다거나 말이다. 당연히 이런 모임들은 그냥 자연스러운 친목이란 목적으로 생기지만 나르시시스트의 무의식에는 ‘x, y에 대한 험담’을 누굴 만나면 꼭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박혀 있다. 이런 무의식적인 목적 때문에 주변인과의 만남을 주도하는 사람도 나르시시스트일 경우가 많다.


이들과 실컷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알던 x가 정말 나르시시스트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생각에 ‘에이 걔가 왜 그러겠어’ 이런 식으로 옹호를 계속하다가 결국 제풀에 꺾이고 마는 그런 대화만 하다가 끝이 나고 씁쓸함만 남는다.


이게 온라인으로 가면 따로 그룹 챗을 만드는 행위나, 거짓으로 사람을 매도하는 글 쓰기로 변모한다. 채팅창에서도 대화의 패턴이 거진 자랑, 대화 상대를 비난해서 무력화시키기, 남의 험담, 필요 때마다 호출 이런 패턴으로 전개가 되는데 대화 어디에서도 나르시시스트가 진심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시도가 포착이 안 된다. 나르시시스트를 친목 상대로 두면 이들과의 대화에서 얻는 것은 거의 없고 피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대화에서 이들에게 내 단점을 공유하는 것은 그들의 덫에 스스로 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들과 더 친해져 보겠다고 내 비밀을 선뜻 오픈을 하는 것은 안 그래도 개인의 바운더리, 곧 선을 넘는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욱 좋은 먹잇감이다. 채팅창의 캡처본, 카카오 스토리나 인스타 그램의 상태 캡처본을 소장하거나 대화 녹취를 몰래 뜨는 것이 아주 수월해졌기 때문에 구전으로 험담을 하던 시대와는 달리 험담의 폭발력이 심해졌다. 그렇기에 나르시시스트들이 온라인이나 문자 상으로 하는 정서적 폭력은 단서를 잡기가 쉬워졌고 형사 소송으로 더 많이 이어지게 된다.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된지는 15년도 채 되지 않았고 에티켓이나 규칙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기에 대부분 자신의 공감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인터넷을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문제에 휘말리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 같은 경우 이런 면에서 취약하고 그로 인해 오해의 소지를 스스로 만들어 되리어 마녀사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어서 직간접적 디지털 성범죄가 있다. 명예훼손과 거의 같은 맥락이다. 위에서 말했듯 남의 험담을 하는데 인생의 많은 시간을 소비를 하다 보면 소셜 미디어의 캡처를 뜨고 대화를 녹음하는 그런 수고까지 하게 된다.


이들은 남들에겐 엄격한 잣대를 두면서 자신들의 흠 없는 이미지를 어필하는 편이다. 의외로 직장이나 사회 내에서 여성 나르시시스트들은 대부분 자신들은 문란하지 않고 도덕적이며 단정한 사람임을 내세운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여성 나르시시스트들은 대부분 리얼리티 텔레비전에 이목을 끌기 위해 등장하는 연예인/인플루언서 지망생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화려하고 도발적인 모습이 혹여나 나르시시스트 여성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하겠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들은 남들의 연애나 유흥 패턴, 드레스 코드, 성적 취향 같은 것들을 안주거리로 삼아 자신의 취약한 자존감을 보완하려는 시도를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성적인 콘텐츠를 남들과 공유를 하거나 도촬도 거리낌 없이 해서 공유를 하는 행위를 저지른다.


예전 직장 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례로 같은 부서의 나르시시스트 여성 한 명은 자기 집 건너편 남성이 집안에서 나체로 다니는 것을 여러 번 봤다며 담너머 남들에게 보이면 불법이 아니냐며 실컷 떠들어대다가 결국엔 스냅챗으로 도찰을 해서 여러 명의 직장 동료들과 공유를 했다. 남들의 노출 불감증은 중죄이지만 자신의 관음증과 스토킹은 죄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관음에 가까운 남의 단점 파헤치기는 인터넷 관련 법들이 진화함에 따라서 더 많은 이들의 발목을 잡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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