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

PART2. 그 여자 이야기(영국을 가다)

by 제이케이

그렇게 다시 1년 10개월이 지났다. 나는 석사 수료를 하고 선배를 보러 과감히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부모님의 허락은 받지 않고 선 티켓 구매 후 말씀드렸다. 내가 이렇게나 결단력이 있는 사람인지 그때 알았다. 당시 부모님은 막무가내인 나에게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석사를 졸업한 학교에서 교내 피트니스 시간강사(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주 2일 출근이었고 출근 시간도 내가 가능한 시간에 할 수 있었다. 주 14시간 일하며 선배도 보러 갈 수 있는 나에게 최적화된 좋은 직장이었다. 사실 피트니스 회원님들의 배려도 있었다. 나의 상황을 아시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려 주셨다. 다른 트레이너 분들께 받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의리 빼면 시체인 분들이다. 그렇게 나는 티켓을 떠나기 5개월 전에 구매했다. 티켓을 결제하고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출발 일주일 전, 나는 입국심사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답변할 영어 문장들을 작성해 준비했고, 숙소 주소, 왕복 티켓 등 자료들을 프린트하고 선배한테 줄 한국 간식과 라면들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나도 꼼꼼할 수 있다는 걸 영국 갈 준비 하면서 느꼈다.

그리고 드디어 두 번째 유럽행 비행기에 이번엔 나 혼자 올랐다. 12시간 비행이 시작되었고 떨리는 마음에 기내식도 못 먹을 줄 알았지만 대한항공 비빔밥은 여전히 맛있었고 야무지게 컵라면까지 간식으로 먹었다. 먹고 자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12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처음 탔던 비행기에서도 나는 잠을 엄청 잘 잤는데 옆에 함께 간 교수님께서 잠을 진짜 잘 잔다며 놀라셨다. 나는 비행에 최적화된 사람인 것인가 드디어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두둥 악명 높기로 유명한 영국의 입국심사라고 듣기도 해서 너무 떨렸지만 나한테 왜 왔냐고 묻기에 남자친구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남자친구를 보러 왔다 그리고 함께 여행하려고 한다라고 준비한 멘트를 하고 나니 나한테 즐거운 여행 되라고 해주며 패스를 주었다. 기분 좋게 입국심사를 빠져나와 선배를 만나러 나갔다. 선배 말로는 그렇게 짧게 끝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럭키였다. 영어 울렁증을 나름 극복해 버렸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과는 다른 공기 다른 냄새가 또 선배와의 어색함을 만들었다. 시차 때문인지 나는 히드로 공항에서 러프버러로 가는 3시간 30분간 내리 잠만 잤다. 선배는 그동안 운전만 했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 나눈 채 잠만 잔 나는 도착해서야 눈을 떴다. 늦은 밤 도착한 우린 배가 고파 근처 난도스로 향했다. 처음 영국에서 식사는 난도스라는 곳이었다. 닭 요리를 부위별로 골라먹는 레스토랑이었다. 닭다리살 부위와 감자튀김, 코울슬로 이렇게 셋 조합은 첫끼로 아주 제격이었다. 영국에서 첫끼를 해결하고 선배가 살고 있는 기숙사로 향했다. 고데기, 내가 쓰는 바디워시, 로션까지 선배도 영국에서 나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해 주었다. 역시 선배다. 그렇게 우리의 영국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

영국에서의 둘째 날은 선배와 학교를 함께 구경 가게 되었다. 한국 대학교 캠퍼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같이 공부 중인 영국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학교 식당에서 점심도 먹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선배의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도 둘러보니 새로움이 가득했다. 선배 학교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운이 좋게도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학교 컨퍼런스 룸에 모여 음악이 흐르고 코스 요리가 나오고 난생처음 보는 크리스마스 파티 현장이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난 고개만 무한정 끄덕였다. 선배는 내가 불편해하는 걸 아는지 인사했으니 나가자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말하지 않아도 여전히 나를 잘 알고 있는 선배였다. 그래도 이런 경험은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날 선배가 홀로 외롭게 어학 했던 아일랜드로 향했다. 아일랜드에서 지낸 홈스테이 할아버지댁에 함께 찾아갔다. 여전히 나는 영어로 소통이 어렵기에 선배의 도움으로 할아버지와 대화에 아주 조금 낄 수 있었다. 아일랜드는 영국과는 분위기가 굉장히 달랐다. 영국은 한국의 부산 느낌이라면 아일랜드는 인천 느낌이었다. 이건 지극히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선배가 지냈던 곳에서 나도 함께 지내보며 혼자 이곳에서 어학 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아일랜드에서 정겨운 할아버지를 만나서 집 걱정, 밥 걱정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하니 너무 다행이었다. 할아버지는 너무도 따뜻한 분이셨다. 우리가 찾아뵌다고 하니 맛있는 크림파스타와 샐러드 그리고 닭요리에 와인까지 준비해 주시고 안방까지 내어주셨다. 마치 시골 할아버지댁에 놀러 간 느낌이었다. 그간 할아버지는 선배와 지내며 같이 자전거 라이딩도 하고 한식도 많이 드셔보시고 즐거운 시간 보냈었다며 좋았다고 하셨다. 선배도 할아버지 덕분에 영어도 많이 늘고 할아버지가 계셔서 든든했다고 한다. 타국에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난 것도 선배한테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은 아침에 근처 펍에 가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맛보았다. 펍에서 아침을 먹는다고?라고 의아했지만 이곳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선배가 있었던 곳들을 여러 곳을 함께 가보며 그동안 지낸 이야기들을 듣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이곳에 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이곳에 와보지 않았더라면 선배에 대해 그리고 환경에 대해 몰랐을 부분들도 너무도 많았다.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차이가 매우 크다. 한국에 와서 볼 때와 영국에서 선배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을 보게 되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더 생긴 것 같다. 한국과는 다른 공기 다른 하늘 다른 주변 풍경들과 문화 속에서 여행을 하다 보니 나도 조금은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새로운 상황들을 마주하다 보면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고려하게 되고 이해하는 부분들도 생기게 되고 다른 고민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이 있는 시간들이 또 더 소중해졌다. 아주 사소한 걸로 나는 여전히 삐지기도 했지만 선배는 여전히 너그러웠다.

한 번은 런던 브리지 가는 길에 영국인에게 인종차별성 발언을 들었는데 선배가 기분이 상한 것 같았는데 나는 그걸 기분 상해하는 선배가 이해가 되지 않아 싸우게 되었다. 나 혼자 또 삐진 거지만 어쩌면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혼자 화를 내며 또 지난 스위스처럼 알지도 못하는 길을 와다다 빠른 걸음으로 혼자 걸어갔다. 연말이라 런던브리지에 사람은 너무 많았고 그 사이에 선배와 나는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잃어버렸다. 이성 잃고 걷다가 정신 차려보니 선배는 없었다. 어두운 밤이었고 어딘지 모르겠는 런던브리지 어딘가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빠르게 선배를 찾아봐도 없었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대체 어디냐고 보이는 걸 말하라고 했다. 우리는 다리를 사이를 두고 있었고 선배가 나를 찾아줬다. 선배가 정색하며 혼자 길도 모르는데 무작정 가면 어떻게 하냐고... 그 말이 맞는 말인데 나는 또 마음과는 다른 말들을 했다. 우린 그렇게 멋들어진 런던브리지 앞에서 다투었다. 여전히 나는 성격파탄자였다. 그래도 화난 나를 풀어주러 선배는 애를 썼다. 여기까지 왔는데 런던브리지 보이게 셀카는 남겨야 하지 않겠냐고 그 말에 기분은 안 좋은데 사진을 찍었다. 웃기는 않나 싸웠는데 셀카 찍는 우리였다. 나는 이번을 계기로 또 반성했다. 어린아이가 아닌데 왜 이리 감정조절을 못하는지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 다짐했다. 함께 지낸 2년 반, 그리고 떨어져 지낸 3년이란 동안 다른 환경들 속에서 우린 또 적응해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PART3. 그 여자 이야기(독일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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