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그 여자 이야기(첫 만남 그리고 시작)
2010년 무더운 여름날, 연구실로 처음 보는 선배가 찾아왔다. 다음 학기부터 석사로 들어온다며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그리고는 다 같이 그 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 앞에 앉은 그 선배는 열심히 고기를 구워줬다. 그렇게 두 달 뒤 그 선배는 연구실에 나오기 시작했다. 같이 실험을 준비하고 같은 공간에 서 하루 종일 보내다 보니 사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 나는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 자꾸 말을 거는 그 선배가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고향이 어딘지, 가족 구성원에 대해 묻기도 했고, 제사를 지내냐는 뜬금없는 질문과 남자친구에 대해도 물었다. 당시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군인이었다. 어느 날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연구실에서 나가려는데 입으려던 코트에 단추가 떨어졌다. 그걸 본 그 선배가 반짇고리를 찾아내더니 야무지게 꿰매주었다. 참 자상한 사람이다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남자친구는 이유 모를 잠수를 탔다. 무튼 그 사실을 알게 된 선배는 나를 기숙사에서 나오게 하더니 바다로 향했다. 그 덕분에 나의 멘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선배와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다 같이 회식을 하게 된 어느 날, 나는 술을 잘 먹지 못하지만 자리에 참석했다가 먼저 기숙사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띠링 문자가 왔다. 그 선배의 문자였다. 그 선배는"혹시 자?" 나는 "아니요 아직 안 자요"라고 답을 보냈다. 그 선배는 지금 기숙사 앞인데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그 선배의 마음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나는 그 선배와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구실에서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구실 내 연애 금지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연애의 시작과 함께 바로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고 교수님께서는 결혼할 거 아니면 당장 헤어져라고 하시기에 우린 만나 보겠다고 했다.
나는 학부생이었고 선배는 석사생이었다. 바쁜 선배로 인해 우린 연구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었다. 주말도 연구실에 나가고 늘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동고동락하며 모두와 함께하는 연애인듯 연애 아닌 연애를 했다. 2012년 우린 함께 유럽 학회를 참석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사실 선배와 나 그리고 교수님 이렇게 단출하게 셋이서 떠났다. 해외는 처음인 나와 선배는 독일에서 공부하셨던 교수님만 믿고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한 주는 교수님과 독일에 레버쿠젠 크리니쿰 레하센터란 곳에서 실습을 했다. 영어도 독일어도 잘하지 못하는 우리 둘은 눈치와 감으로 맞춰가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 후 학술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향했다. 그렇게 3일간은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교수님께서 우리 둘에게 자유 여행 시간을 주셨다. 출발 전부터 자유여행 시간을 일주일 줄 테니 둘이 놀다 오라고 하셨고 우리 둘은 영어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면서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여행을 시작했다. 요즘은 많은 정보들이 있어서 여행 계획을 너무 잘 짤 수 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방대한 양의 정보가 있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어보려 한다. 숙소도 스위스와 체코만 예약을 해두고 프랑스와 다시 돌아갈 독일은 숙소 예약조차 해두지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그때 생각을 하면 아주 아찔하다.
프랑스에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렸는데 숙소도 정하지 않았던 우린 정처 없이 비를 맞으며 길을 헤매다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에게 에펠탑과 가까운 호텔에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아는 건 에펠탑 뿐이었다. 심지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 둘은 손짓 발짓 콩글리쉬를 섞어가며 애절하게 호소했다. 우릴 에펠탑 바로 앞 머큐어 호텔에 내려주셨다. 세상물정 모르는 우리는 일단 머큐어 호텔에 비 맞은 생쥐꼴을 하고 들어가 2박 할 수 있는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말도 안 통하는데 우리의 의사가 전달이 되었는지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에 성공했다. 그때 당시 1박에 30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우리 둘은 통장에 있는 돈을 긁어모아 들어갔고 그날 저녁 모든 긴장이 다 풀려 녹초가 되었다. 택시를 타기까지도 길도 모르고 비는 오고 숙소도 안 잡아 놓은 상황에 짜증이 있는 대로 났고 나는 선배에게 온갖 짜증이란 짜증은 다 부렸다. 그럼에도 나한테 화 한번 내지 않고 침착하게 옆에서 나를 케어해 줬다. 심지어 잘 삐지기까지 하는 나는 낯선 곳에서 예민도도 높아졌다. 스위스에서는 점심 먹으러 한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크림소스가 아닌 계란 노른자만 달랑 위에 있고 주변은 베이컨으로 가득했다. 한국에서 까르보나라는 분명 크림이었는데 그제야 알았다. 이곳에서 까르보나라는 크림이 아니구나! 나는 파스타가 맛이 없다며 선배를 두고 혼자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성격파탄자였던 것인가 내가 시켜놓고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혼자 나가다니 지금 생각해도 나는 성격파탄자가 맞았다. 그럼에도 선배는 뒤따라오며 나의 뒤를 지켜주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느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배가 결혼하자 한 것도 아닌데 나 혼자만의 생각을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나는 배려를 많이 하고 착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왜 유독 선배 앞에선 악마의 탈을 썼던 걸까 의문이다. 그런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묵묵하게 지켜주는 모습을 보며 그때 무장해제 되어 나 혼자 선배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했다.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왈패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만난 지 2년쯤 되던 때 선배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다 선배는 처음 연구실에 올 때부터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날이 온 것이다.
우린 약 8,917km (5,573마일) 초장장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 선배는 영국으로 학교를 들어가기 전 아일랜드에서 어학을 했고 나도 그 무렵 다른 학교에서 석사 생활을 시작했다. 시차 때문에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우린 아침에 일어나면 지금 일어났다, 지금 학교가, 지금 학원 가는 중 등등 답이 오지 않아도 남겨두는 습관이 생겼고 그날 있었던 일들과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서 매일 밤 메일로 적어 보냈다. 우린 연애 초반 자주 싸우기도 했다. 나 혼자 화내고 나 혼자 푸는 그런 1인 모노드라마를 찍었던 거지만 나는 소심하고 삐지면 말을 안 하는 편인데 선배는 말로 풀어야 하는 성격이라 그런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장거리 연애이다 보니 내가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그대로 단절이 되는 상황이라 그때부터 바뀌려 노력했다. 유럽을 같이 여행하며 나의 뇌리에 박힌 선배 모습을 떠올리며 매번 반성했다. 일방적인 연애가 아니기에 먼 타국에 홀로 있는 선배를 생각하니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다. 싸워도 카톡은 주고받는 웃픈 상황도 있었다. 싸웠지만 우린 서로에게 배례했다.
그렇게 1년 나는 나대로 선배는 선배대로 각자의 시계는 흘러갔고 드디어 선배가 어학을 마치고 석사 입학 전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되었다. 아직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학교 연구실에서 마치고 나오는데 정문 앞에서 꽃 한 송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치 처음 만나기 시작하는 날처럼 어색했고 떨렸다. 2년 반을 365일 중 360일은 붙어 있다가 1년을 떨어져 있어서인지 다시 첫 데이트인 것처럼 느껴졌고 우린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말들 데이트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을 보고 싶었을 선배와 선배네 집으로 향했다. 나는 연애 시작부터 선배네 집에 제집 드나들듯 자주 갔고 혼자도 가끔 갔다. 그렇게 한국에 온 선배와 선배 본가에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전에는 만남이 당연한 날들이었다면 장거리 연애에서는 만날 수 있는 날이 많이 없었기에 1분 1초가 소중했다. 처음 며칠간은 어색함이 흘렀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다시 우리로 돌아왔다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연극도 보러 가고, 헤어지기 싫어 밤에 난지캠핑장에 캠핑을 하러 가기도 하고 다시 1년간 못한 데이트도 몰아서 해보며 한 달간 시간을 함께 했다. 그렇게 다시 헤어져야 하는 날이 왔고 우린 또 1년 전 그날처럼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슬픔을 견디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또다시 우린 일상으로 돌아가 9시간의 시차 여름엔 서머타임으로 조금 짧아질 때도 있었지만 내가 자는 시간엔 선배는 하루를 시작했고 내가 일어나면 선배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서로 다른 시간 대를 살아가며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다음 편에 이어서... PART2. 그 여자 이야기(영국을 가다)
JK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