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지트)
언젠가부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나의 첫 이야기 이제 시작해 보려 한다. 전 직장을 다닐 때 일상의 회복이라는 수업을 맡은 적이 있다. 치매환자의 보호자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그때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으로 내가 당장 어딘가로 떠날 수 없기에 나만의 상상의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눈을 감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정하고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소리와 향기를 입히는 것으로 만드는 나만의 아지트라는 것이다. 아지트를 만들고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언제든 어느 때나 나를 그곳에 데려가는 방법이다. 내가 생각한 나의 아지트는 소백산+밥 짓는 냄새+ 나무 향이었다. 소백산이 된 이유는 2018년도 어느 날,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에 3번째(3년째) 낙방한 나는 세 번째 실토를 하러 아빠와 소백산을 향했다. 사실 아빠한테 말할 자신이 없어서 등산 가시죠라고 말했다(엄마는... 이 사실 알고 계셨어요). 어쨌든 그렇게 소백산 한걸음 두 걸음 오르기 시작하고 처음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까마득했다. 올라가는 길은 그 고민으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튼튼한 두다리는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계속 올라가다 보니 벌써 정상에 도착한 것이 아닌가 정상에서 본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있었다. 아주 멋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으니 인생에서 가장 멋있는 광경으로 대신하겠다. 등산을 좋아했더라면 다른 좋은 산들도 많았겠지만 나는 소백산이 최초이며 최고였다. 자격증 낙방의 실토를 위해 간 산행이었지만 참 힐링 되었던 공간이었다. 정상에서 주변을 보자마자 자연 앞에 나의 모든 걱정은 내려앉았고 심취했었다. 그리고 내려갈 무렵 자연스레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 아빤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테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일단 말씀드려보자 생각했다. 정상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내려가며 이실직고 성토했다. "아빠 사실 저 또 떨어졌어요... 열심히 했는데 잘 안되었어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빠는 "내년에 다시 하면 되지 고생했어!" 딱 이 두 마디 해주셨다. 왜 그렇게 이 말이 어려웠을까 왜 마음 졸이고 속을 끓였을까 싶을 정도로 가볍게 끝났다. 하지만 나는 이미 졸업도 했고, 취업이 아닌 자격증 공부만 3년째 하는 못난 딸이라 생각해 내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스토리가 있는 소백산은 항상 갈 수 없으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 되는 상상의 아지트로 생각났다. 그리고 이 상상의 아지트가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바로 아이를 출산 후였다. 출산을 하고 나서부터는 나만의 시간 혹은 나만의 공간이 더 더욱이 있을 수가 없어서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것이 바로 일상의 회복의 아지트였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는 매우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낳고 한 시간에 한번 수유를 하고 트림 시키고 소화시키고, 눕히고 다시 수유 트림 소화시키기 눕히기를 반복했던 두 달, 그리고 점점 수유 텀은 2시간-3시간으로 길어졌고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턴 이유식과 분유로 변화했다. 그때의 나는 경주마처럼 내 눈과 머리, 마음과 몸, 모두 소중한 아이만을 향해 보고 달려가고 있었다. 나를 돌볼 시간은 없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면 씻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최소한의 양치만 할 뿐, 세수는 사치였다. 남편이 오는 시간이 되면 그제야 씻을 수 있었다. 사실 나의 성향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친구는 아이를 두고 씻으면 되는데 왜 굳이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나는 걱정인형이다 내가 보고 있지 않은 그 순간, 그 사이에 아이가 어떻게 될까 싶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맞다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새벽에도 수유는 계속 이어졌고 잠을 도통 통으로 자주지 않는 아이로 인해 좀비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6개월 1년, 2년, 3년 아이에게 모든 걸 맞추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사실 15개월이 지난 시점 나는 복직을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병원을 갔다. 365일 중 정말 300일은 약을 먹은듯하다 어린이집도 보내지 못했다. 여름에 수족구는 연이어 두 번이나 걸렸다. 자주 아픈 아이를 두고 나는 2시간이나 걸려 출근을 감행할 수가 없었다. 자주 열이 나고 아픈 아이가 혹여 나로 인해 더 아파질까 나는 과감히 복직 신청이 아닌 사직서를 내러 2시간에 걸쳐 회사로 향했다.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나는 눈물을 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눈물이 났는지 아마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세 돌이면 다시 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서서 나왔다. 정말 아이가 세 돌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는 날도 점점 줄어들고 면역력을 키워 나갔다. 그래서인가 나의 뇌의 여유가 생겼는지 나도 나를 찾고 싶어졌고 집에서 육아만 전념하는 것에 무기력해져갔다. 누가 보면 아주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재취업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처방사이다 아니 운동처방사였다. 병원 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할 순 없지만 모 종합병원 서류전형 통과를 하고 야심 차게 면접을 보러 갔다. 5명이 한조로 들어가 면접을 진행하는데 자리에 앉는 순간 나에게 온 첫 번째 질문이 나이가 많으시네요? 3년이나 공백이 있네요? 육아하면서 일을 어떻게 다시 하실 수 있나? 출퇴근 거리도 먼데? 등등 질문을 순화해서 적고 있지만 매우 공격적인 질문들이었다. 왜 나를 이 자리에 불렀는지도 모르겠는 상처만 남은 면접을 봤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참아내어 답했고 대차게 탈락했다. 그 후로도 두 곳에서 비슷한 질문들을 받으며 면접에서 탈락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를 반복하며 나는 직업, 나의 전공,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경력단절이라는 일생일대 만리장성보다도 높은 벽 앞에 나는 처참히 무릎 꿇었다. 한동안 탈락의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다 그리고 막가파 아줌마다.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뭐든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다른 분야로 인턴부터 다시 시작해 보려 지원했다. 현재는 운이 좋게도 그곳에서 8개월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지 어떤 것을 하면서 살아갈지 계속 뭐가 되었든 헤쳐나가 보려 한다. 인생 어렵게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것 같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또 한없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내 인생 내 맘대로 훌랄라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상상의 아지트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일을 하며 삶의 활기를 찾았다. 일하면서 육아를 병행하니 걱정 근심을 씹어 먹을 만큼 잡념이 사라졌다. 또다시 아지트를 찾을 때가 오겠지만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무엇이든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 힘들 때, 마음이 힘들 때 상상의 아지트를 만들어보세요. 나만 갈 수 있는 곳 나만의 공간이니 내 마음대로 조금이나마 휴식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으니 누군가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편안함을 잠시 느껴보실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JK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