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빨래를 정리해서 각자의 자리에 넣어두느라
나는 또 고요한 분주함을 내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나의 손길이 가장 닿지 않는 장소, 서재.
우리집 서재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 좋아 서재쯤?이고 사실은 내 색깔의 인테리어가 거의 없어서인지
내 관심 밖의 장소이자,
그러다 보니 온갖 갈 곳 잃은 것들의 집결지이며,
그래서인지(?) 내 남자의 옷가지들도 그곳에 두게 되었다. 허허
오늘도 야근하는 그의 옷가지를 정리해서 서재로 들어갔다.
옷을 정리해서 넣어두고는 뒤 돌아 나오려 하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문득 생각났다.
오늘 아침 분주한 등원길에,
이제 비타민 얼른 먹고 출발하자는 나의 말에
‘엄마, 잠깐만요. 거의 다 썼어요.’하며 무언가를 쓰고 있던 그 아이의 모습이.
저걸 준비해두었던 거구나. 어쩜 너는 참..
6살이 거의 끝나가면서,
이젠 더 이상 아기라고 부를 수 없는.
너무 길어져버린 팔, 다리.
너무나 또렷해져 버린 발음,
가끔은 버거워질 정도로 단단해져 버린 너의 논리,
때론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읽혀버리는 나의 속마음까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나의 아기는 없어져버린 것 같아 아쉬웠다.
어떤 날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그 아기를 나의 sns 속에서 찾아보며 ‘보고 싶어’라고 조용히 말해보기도 했다.
게다가 요 근래의 육아는 내겐 좀 지쳤었다.
그 해맑고 으떼떼 거리던 아기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엄마의 논리를 현란한 수비로 막아내고 자신의 논리를 펼쳐내는,
이제는 뭐 거의 나랑 말로 다이다이를 뜰 것만 같은 이 아이들과의 시간이,
그리고 앞으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란 막연한 미운 마음이 나를 짓눌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육아에 지친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어떠함 때문으로 비롯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의 어떠함에서 시작된.
결국의 나의 문제일 것이란 사실.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쑥 커버려서 사랑스러움은 으떼떼 발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았던 그 아이에겐,
넘치는 사랑스러움과 더 깊어진 예쁜 마음이 있었다.
다만 내가 지쳐서, 내 마음이 고단해져서,
그걸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밤이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동하였고,
이 친구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으며,
이런 친구를 가끔은 도리어 미워하기도 했던 오히려 미운 마음의 이 엄마가 민망했다.
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육아는 매일이 다른 날.
육아가 클리셰가 쩌는 지루한 나날이라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클리셰가 쩌는 건 나뿐일지도 모른다.
나의 친구들은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다.
오늘의 이 아이는 내일이 되면 없다.
아주아주 미세한 그들의 성장과 변화들에
클리셰 쩔게 지내고 있는 이 바지런하지 못한 엄마가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일지도,
그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놀라게 되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뿐. 그뿐일지도 모른다.
늘 들여다보고, 가득 감동하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분명 어제와는 달라진 오늘인데 비슷하다고 진부해하지 않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오늘의 작고 반짝이는 것을 가득 모아두어야지.
그리워하기보다 기대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얘네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그렇게 해보아야지.
육아는 매일이 다른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