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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Nov 24. 2021

이제서야 장래희망

많이들 그렇듯 의무교육의 과정을 지나 대학을 갔고 대학 후 취업을 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거나 어떤 일을 할 때 즐겁다와 같은 고민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냥 주어진 것을 익혔고, 외워냈으며, 요구하는 것을 풀어내는 시간들을 지나다 보니 세상은 어느덧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했고, 어른이라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아이러니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나의 사회생활은 뭐랄까 그냥 바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누군가와 똑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괜한 똥고집이나 객기 같은 것이 나를 참 피곤하게 했단 생각이 드는 그런 시간들이기도 했고.

나에 대해 생각해볼 것 없이 흘러가는, 그치만 나의 노동으로 경제적 자유와 보상이란 약간의, 하지만 절대로 무시 못 할 만족감이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게 물리적인 경력과 시간들이 채워지는 동안 어쩌면 단 한 번도 나를 깊숙이 돌아볼 여유나 필요, 시간은 너무나 부족하지 않았을까 이제야 생각하게 된다

 더 나아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 나아지기 위한 방법으로, 지금껏 채워온 주머니 크기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유로 같은 전공의 대학원을 갔고, 시험을 보았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매너 없지만 참 한결같은 ISTJ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육식 토끼 한 마리와 초식 화성인 한 명을 낳은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나의 직업이고 소명이었는데, 내 주머니도, 나도 그대로인데 나의 환경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버렸더라.

퇴근을 하며 자주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정작 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키워지는구나. 다른 아이들에게 나의 에너지와 사랑을 다 나누어주고, 텅 비어버린 몸과 마음으로 내 아이들을 대하고 있구나.  

슬펐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닌데, 진짜 이게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채워졌다. 결국 복직 1년 만에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또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어제 복직 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휴직을 연장하겠다고 대답하였지만, 그날 밤 고민이 깊어져 버렸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 곧 7살과 6살이 될 것이고, 요 근래 들어 자주 느끼는 것처럼, 이 친구들에게 있어 나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새삼 생각한다. 이 휴직이 필요한 것은 나일까, 이 아이들일까..


그래서 상상해보았다.

자, 내가 다시 복직을 해.

내가 칼퇴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또 아이들은 '엄마, 우리 반에 나 밖에 없었어, ' 혹은 '나랑 OO이만 있어서 재미없었어.'같은 이야기를 하겠지. 만약 학원을 돌린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순 있겠지만,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또 '남의 아이들 키워내는라..' 그 생각을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리고 바쁜 나의 남편에 대해 과연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대할 수 있을까, 그가 뿌듯함으로 내미는 그의 보고서를 예쁜 마음으로 읽어주며 되지도 않는 피드백이나마 전할 수 있을까.

원망이나 뾰족한 마음이 나를 에워쌀 때, 과연 내가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야.. 난 결국 못할 거야. 내가 복직만 안 하면 우리 집은 평화로 울텐데..

그럼 어쩔 건데. 이제 휴직할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진짜 휴직 다 써버려서 퇴직을 하고 나면 너 버틸 수 있어? 돌아갈 곳 없다는 그 불안함을 이겨낼 수 있어?

30대 후반의 애엄마인 니가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게 말이나 돼? 아니 시작한다고 해도 그걸 누가 인정해줄 만큼 쌓아낼 능력이 있기는 하고?

때늦은 진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 생애 최초의 진로 고민일지도.

그동안은 주머니를 키우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나의 이 변화된 공기와 환경은 주머니를 교체할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사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휴직을 하고 갖게 된 조용한 시간들을 지내며 들여다본 나에 대해 다시 꺼내보고 싶다.



하지만 난 용기가 없고, 나이가 많아졌으며, 챙겨가야 할 두 명의 아이가 있다.

이런 그럴듯하면서도 치사한 핑계들 사이에서 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현재 당면한 짧은 결정의 기한은 다음 주까지.

다음 주 안엔 휴직연장 여부를 결정해서 서류를 제출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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