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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Feb 24. 2022

일차방정식

육퇴 후 늦은 밤,

대뜸 나는 남편에게 소금물 농도나 두 사람이 세 번째 만나는 시간을 구하는 따위의 수학 문제가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공대생인 남편은 약간은 비웃듯 그건 초등학교 고학년 과정이면 하게 되는 일차방정식이라고 했다.

괜한 도전정신이 생긴 나는 문제를 내 달라고 했고, 남편은 꽤나 들뜬 표정으로 일차방정식 출제위원이 되었다.

현수와 민호가 달리기를 하는데 현수는 출발 지점에서 초속 7m, 민호는 현수보다 40m 앞에서 초속 5m로 동시에 출발하였다. 두 사람이 두 번째로 만나는 시간을 구하시오.


문제를 풀기 시작한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근데, 어떻게 이게 일차야!!!!!!! 이렇게 복잡한데 12차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 둘이 만나는 시간이 왜 중요해! 만났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속도가 다른 둘이 만난다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냐고!!”

“이거 민호하고 협의가 된 거야? 자기가 현수보다 더 느리다는 걸 이렇게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만천하에 오픈해도 되는 거냐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일로 돌연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상하고 마음이 상하고, 결국 과자 한 봉을 때릴 정당한 이유를 찾은 그런 밤이었다.


친구인 현수와 민호는 키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리는 속도가 차이가 있었다.

같은 교육과정을 밟았지만 나는 12차 같은 일차방정식이 꽤 어려웠고, 남편은 암산으로도 가능한 거라며 신나서는 비아냥 거렸다.

6살이 될 때 즈음엔 1번 어린이는 조금씩 받침 없는 글자를 읽어냈지만 2번 어린이는 아직까지 자기 이름과 언니 이름의 글자를 아는 정도이다.

얼마 전 친구의 sns를 통해 우리 2번 어린이보다 몇 개월 늦은 딸이 글자를 능숙하게 써내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우리 2번이 너무 한글을 모르는 거 아니야 이거? 언니도 한글을 금방 읽었고, 이렇게 2번보다 늦은 개월의 아이도 하는데..’하는 마음이 슬쩍 자리를 잡더라.

얼마 전 들렀던 치과에서는 의사 선생님께 ‘이 나이 아이들하고 비교해서 충치가 많은 편인가요?’하고 질문하는 나를 보고는 머리를 땅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차피 읽게 될 한글을 가지고 이렇게 내 마음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을까.

또래에 비해 충치가 적다 하면 그게 과연 위로가 되었을까.

혹시 위로가 되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랴. 충치는 어차피 치료해야 하는 것이고, 이미 이는 썩은 것이거늘.


일차방정식이 쏘아 올린 공은

두 아이를 키우며 두 아이들 사이에서, 또래와 내 아이 사이에서 만들어낸 이 엄마의 못난 잣대를 드러나게 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문득 일차방정식도 시원하게 풀지 못한다는 커밍아웃이 너무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 하며 망설여졌으니까..

내 기준으로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는 내 쪼를 펼치며 개성 있고 자존감 단단한 사람이고 싶은데.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 감탄하면서도 실제의 나는 과연 모두의 지능에, 모두의 빛나는 것에, 진심으로 멋지다고 존중해왔던 걸까.

사실은 그러지 않아 더 그러고 싶어 하며 더 그런 것처럼 살고 있나 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고 싶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

내 배에서 나와 내가 키우지만 어찌 저리도 다를까 싶은 저 두 아이를, 다른 그대로 인정하고 그 다름이 또 그 아이들 다움으로 발산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게 없는 것, 내 아이에게 없는 것보다

내게 있는 것, 내 아이가 지닌 사랑스러운 것을 보며 오늘을 지내보아야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나버린 이 긴 가정보육의 시간 동안 그런 것들을 찾아보아야지.

아니 우선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더 그래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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