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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Aug 21. 2023

부전나비

  나는 곤충을 참 안 좋아한다. 하지만 뭐 그나마 괜찮다고 한다면, 사마귀(얘는 뭔가 지 쪼가 있어 보이고 매력 있음), 무당벌레(칼라가 자기주장이 있어 이쁘고),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뿔이 맘에 듦) 정도이다.(말해놓고 보니 곤충을 꽤 좋아하는 사람인 건가 싶기도) 그런데 나의 두 친구들은 길을 걸으며 만나는 온갖 곤충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방금도 그냥 못 지나치고 5분이나 머물러 섰던 개미가 왜 또 반가운 건데. 왜 실물을 난생처음 본 것처럼 또 반가워하는 건데. 이렇게 하면 우린 도대체 목적지까지 언제 도착할 수 있는 건데. 매번 답답하고 이해가 가지 않음에도 또 같이 멈춰서는 이유는, 그 시간의 그 친구들의 표정과 오가는 말들이 너무나 예쁘기 때문이다. 분명 방금 지나친 개미인데 난 분명 똑같아 보이는데 기껏 해봐야 아까보다 크든지 작든지 일뿐인데 아까 그 개미를 봤던 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점을 발견하며 하지만 아까와 꼭 같은 예쁜 표정을 짓는다. 

  어린이를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자유롭게 여행하고, 핫플레이스를 섭렵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움이 사무치고 영화 보고 싶어, 밤길을 고즈넉하게 걷고 싶어, 퇴근 후 조용하게 멍을 좀 때리고 싶어 등등 어느덧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위하지 못한 삶의 방식에 자유를 무지 갈망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감정의 카테고리가 출산과 함께 생겨난 게 틀림없다. 나의 sns는 그 친구들로 꽉 채워져 있다. 그 친구들은 나의 이야깃거리이며 도리어 나를 발견하게 하는 존재이고, 어떤 날은 그냥 나 같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갈 뿐 아니라, 커갈 때마다 달라지는 그들의 어휘나 말투, 빠져있는 것, 곤란한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 등은 지켜보는 입장에서 정말이지 흥미롭다. 물론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어떤 시기의 어떤 특징이 소멸되는 양상을 보일 때면 못내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무언가에 잘 빠지고 쉬이 질리는 이놈의 성향과 꽤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복직을 하고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하루하루가 많아졌다. 어쩔 수 없는 거라 합리화하기도 했고, 나 스스로가 지치다 보니 내 에너지가 이전처럼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런 날들에 맞이한 방학은 비록 여전히 자유는 없지만 아첼란도로 연주 절정으로 치닫던 순간에 맞이한 수비토 피아노 같다. 꽉 채우고 있던 화성과 세션이 남기고 간 빈자리는 그 공백을 채우는 다른 공기를 이제야 느끼게 한다. 방학을 마치고 오랜만에 가게 된 유치원에 다시 처음처럼 떨려하던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눈 마주치며 엄마가 8살 무렵 학기 초마다 겪었던 그 말로 다 못할 떨림과 불안함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걱정했던 그 하루를 잘 마치고 온 후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해는 진짜 믿을 수 없을 만큼 더운 날들이었다. 아침부터 셋이 카페에 앉아 각자가 고른 색종이로 팽이를 접었다. 한바탕 수다도 떨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름 볕에 더할 나위 없이 쨍한 초록을 뿜어내는 풀들이 오른편에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나 나의 친구들은 멈춰 섰다. 아 제발. 나 너무 덥다고 지금!! 하는 마음으로 한 마디 하려는데 땀 많고 매일 더워하는 발간 볼을 가진 1번 친구가 허리를 조금 굽히고는 화단 쪽으로 검지 손가락을 내밀고 서 있더라. 그래. 잠깐 기다려보자. 뙤약볕 아래의 5초는 영겁의 시간이다. 찰나와 같은 인내심이 바닥나고 또다시 한 마디가 나가려던 그때 검지 손가락을 내밀고 가만히 기다리던 그 친구가 입을 연다.


  부전나비야, 나 오늘 옷에 노란색 있다!


  언젠가 함께 읽었던 곤충 관련 도서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나비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옷에 작은 노랑무늬가 있던 나의 아이는 부전나비를 발견했고, 

  나는 부전나비 덕에 생각지도 못한 행복을 발견한다. 

  부전나비야, 나에겐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단다. 정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가.

  날씨도 사랑도 참 뜨겁던 나의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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