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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Aug 23. 2021

대체로 흐림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이란 건 사실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가장 안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그건 슬픔이 자주 엄습한다는 것이다.

막 어른에 접어들었을 땐(사실 그게 언젠지 객관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음.. 오늘은 기분 좀 다운되네?’ 했었다면

이제는 ‘음.. 오늘은 어쩐 일로 꽤 에너지가 있구만!’하게 되었달까.

분명 나는 흥대장이었는데

지금도 흥은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내가 나의 우물 깊은 곳에서 힘겹게 길어온 소중한 한 바가지 정도가 되는 듯하다.

예전에 나의 흥이란 건 내 의지도 이성도 관여하지 않는 카테고리였다면 이제는 내가 의지를 불러 소환시켜야 하는 것이 된 건

아마 어른이라면 다들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흐려져버린 이 마음을 가만히 들여보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마치 초롱 아귀가 살 만한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생각한다.

그냥 이젠 대체로 흐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이따금 다가오는 맑은 날엔 한껏 소풍을 떠나고

또다시 흐린 일상에선 조금 힘이 들더라고 우물 깊은 곳에서 흥을 소환해야지 뭐.

그게 너무 힘이 들 땐 그냥 흐린 대로 왜 흐릴까 뭐 때문일까 하지 말고 그냥 오늘은 흐린 날이구나 하고 촉촉하게 비를 맞아내자고.

왜냐하면 흐린 날에도,

비를 맞아 더 선명해진 초록이

구름이 드리워 한층 더 수월해진 산책의 분위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쿵하고 떨어뜨릴만한 인생 글귀를 떠올릴지도 모를 감정선이

따뜻한 커피가 더 꼬숩게 느껴질 만한 말랑말랑함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거봐라,

대체로 흐리다 보니

이런 글도 쓰게 된 게 아닌가!

어디서든 무엇으로도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건배하자, 흐린 날에 들어서게 된 어른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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