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호랑이재채기에 대하여

(시끄럽다 진짜…)

by 끼라

몇 년 전, 엔시티드림 자컨을 보는데 거기서 막내 지성이가 재민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형, 천둥호랑이재채기 소리 좀 어떻게 할 수 없겠냐고. 너무 깜짝깜짝 놀란다고. '천둥호랑이재채기'라는 말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 말을 하는 막내 지성이가 귀여워서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다.

나도 청각이 예민한 만큼 종종 누군가의 '천둥호랑이재채기' 소리 때문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소리로 재채기하는 건, 하나같이 다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대개 입을 가리지도 않고 분비물을 튀긴다. 왜 유독 남자들의 재채기 소리가 유난히 큰 걸까? 덩치의 차이일까? 폐활량의 차이일까? 아니면 볼륨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인가? 나는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생물학보다 사회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도록 교육받는다. "사내자식 목소리가 그게 뭐냐", "남자답게 어깨 펴고 당당히 걸어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억제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공공장소 예절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않은 듯한 이들이 널리고 널렸다.

더 나아가, 얼마 전에는 길을 걷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항상 남자들은 길 한가운데로만 다니지?', '왜 남자들은 맞은편에서 누가 와도 피하지 않는 거지?' 그들의 꼿꼿한 태도를 보면서 나는, 남자들은 세상을 자신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걸 깨달았다. 길에서 상대가 피할 것을 당연시하는 그 심리는, 천둥호랑이재채기와도 맞닿아 있었다.

반면 여자들은 재채기가 나오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코를 틀어막거나 소리를 꾹 삼킨다. "에취!" 하는 작은 소리조차 머쓱해하면서 급히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이는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학습해 온, 배려와 양보라는 이름의 자기 검열에서 비롯된 습관일 테다.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조심해라, 조신해라, 양보해라,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와 같은 무수한 압박 속에서 자란다. 길을 걸을 때도 가장자리로 붙어 걷고, 미리 몸을 움츠리는 건 늘 여성이다.

타인의 편안함을 위해 자신의 신체적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는 것. 이것이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여성성'의 실체다. 남자의 천둥 같은 재채기 소리는 그들이 가진 사회적 권력의 크기를, 여자의 소심한 재채기 소리는 지금껏 감내해 온 사회적 억압의 깊이를 보여준다.

재채기 소리를 공평하게 해야 한다거나, 길을 걸을 때 서로 양보하자는 평화주의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의 자유로움이 타인의 평온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생리적 현상을 당당히 표출해도 괜찮다는 감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길 한가운데를 점유하는 당당함이 누군가의 양보 위에서 싹튼 것이라면, 그것은 당당함이 아니라 권위주의일 뿐이다. 왜 누구는 마음껏 천둥호랑이재채기를 할 때, 누구는 코를 틀어막은 채 소리를 삼켜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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