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by 끼라

작년에 인간관계에 변화가 많았다. 오랜 인연을 끊어내기도 했고, 반대로 급격히 가까워진 이들도 있다. 공백이 길었던 오래 전의 인연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함께한 세월이 둘 사이의 거리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오래된 인연이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속내를 다 아는 건 아니다. 반대로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꼭 경계할 필요도 없다. '함께한 시간'이라는 요소를 친밀도의 기준에서 덜어내고 나니까, 좀 더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예전보다 더 편안히 나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도, 마음을 흔쾌히 내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 시간에 발목이 붙잡혀서 억지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어갔던 만남 또한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과는 서로의 일상, 생각, 고민, 감정을 가감 없이 전부 공유하곤 한다. 솔직하고 즐거운 대화와 빈번한 교류가 이어질수록 사이는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끈끈한 우정을 실감하며 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 자라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욕심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인간관계는 어느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 가까웠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도 하는 게 인간관계이지 않은가.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먼저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이야기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그저 귀담아 들어주는 것. 그게 전부다.

무엇보다 함께할 수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지막 순간은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손절이었든 자연스러운 헤어짐이었든 간에 누군가와의 마지막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나간 인연에는 미련이 없는 편이지만, 수많았던 '마지막 순간'들은 어쩐지 후회가 된다. 앞으로 두 번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좋은 말을 해줄걸,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걸, 무심하게 대하지 말걸, 제때 사과할걸, 그냥 용서할걸. 후회해 봤자 소용은 없지만 멋대로 밀려오는 후회를 막을 도리도 없다. 그러니 뒤늦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관계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지막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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