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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희 Oct 17. 2023

#10. 어쭙잖은 위로

챕터 3. 도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10. 어쭙잖은 위로



  살다 보면 참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많다. 하지만 사람의 방어기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거부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위로라는 것을 놓칠 정도로.


  고등학교 때는 참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다. 어쩌면 그 시절에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 상담소라는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묵묵히 듣고 위로하고 중재하고 이야기했다. 착하고 좋은 친구이자 선후배 혹은 착한 호구 둘 중 하나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다행히 내 주변에는 순박하고 솔직한 친구들이 많았다.


  사춘기 소년에서 서른 가까이 자라는 동안 이렇고 저런 사건들도 많았고 각자의 이유로 또 연락이 줄어든 친구도 있다. 그래도 각자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간 것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나와 싸워서 연락이 끊긴 친구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있었다면 기억하기 싫어서 잊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친구도 잘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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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고민을 듣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중심으로 모이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내향적이던 어린 날에 남에게서 에너지를 얻던 내가 사춘기를 지나며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상담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내가 딱 하나 지키려고 노력하던 것은 비밀을 지키는 것에 대한 원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자발적으로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로 끈끈한 친구들이면 자처해서 이야기해 보라며 들어줄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친구가 말하고 내가 들어줬던 것처럼 나의 고충을 친구들에게 상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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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로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조금씩 좋아하게 됐다. 지금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틀이 잡힌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결국은 내가 나를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은 아무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더 입을 닫았으니 말이다. 당연히 입을 닫아서 남들은 나를 모를 수밖에 없었는데 참 멍청했다. 학창 시절에 가장 아쉬운 나의 모습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았다. 그래도 나를 말하기 시작해서 다행이다. 덕분에 가벼운 관계는 어느 정도 정리되고 진중히 더 깊고 오래가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나를 세상에 말하길 수년. 어느 순간 크게 후회로 자리 잡은 것이 하나 있다. 물론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하고 도움이 되려 했지만, 나는 위로의 무게를 하나도 알지 못했다. 타인의 경험에 대해 이해는 못하는 데 감정적 공감만 잘했던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내 어쭙잖은 위로에 만신창이인 속을 부여잡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위로보다 농담을 많이 던지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웃음을 찾아주는 데 주력하게 됐다. 각자가 미친 듯이 부딪히는 삶이 있다. 나도 있고 친구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삶이 바빠서 친구의 힘듦을 공감할지언정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매번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아직 어색한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실없는 농담을 마구 던지지 않을 정도에 눈치는 있어서 다행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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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말하고 남을 듣고. 또 나를 말하고 남을 듣고. 시간이 지나니 나는 그저 싫기만 하던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외적 내적 콤플렉스의 문제는 아니다. 그저 반복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와 매력을 알게 되었달까?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을 보니 나는 결국 글을 쓸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나를 숨 막히게 만드는 시련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심장이 쿵쾅거려서 목젖이 뛰는 것처럼 걱정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감정들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각자의 삶을 나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기에 부족한 ‘토닥토닥’ 대신에 조금 더 많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차라리 농담을 던져본다.


 “지금 진짜 힘들어 죽겠다면 제가 조금 덜 힘들어 볼 테니까 저보다 아주 조금만 덜 힘들어 보세요. 같이 파이팅..!?(어색한 웃음)”




#10. 어쭙잖은 위로

챕터 3. 도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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