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2 나는 못마땅하다. 그래서..

뭐 그래서.

by 게으른 낙타

이게 참 우습다. 군중 심리를 탓할 생각은 없다. 아니. 사실 탓하고 비판하고 싶지만 군중 심리도 취향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줄을 서서 먹는 식당, 카페, 빵집, 유행하는 과자, 게임, 옷 다 군중 심리를 떠받쳐주거나, 아니면 군중 심리가 떠받쳐주는, 어쨌든 사람들은 그런 행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살아간다. 더구나 미디어나 기기의 발달은 이런 심리 가스를 늘 군중 속에 살포하기 마련이다. 자본의 속성은 그런 심리를 이용하고, 만들고, 폐기 처분하는 것에도 능숙하다.

시작이 길었다. 나도 군중 심리에 얻어 타 보자. 어떤 남자가 죽었다. 한 나라의 국왕이었다. 그리고 그 엄마가 섭정을 했다. 여동생은 후계자로 낙점이 되었다. 그 나라는 강한 힘을 가졌다. 그것은 말 그대로 물리적 힘이다. 핵무기가 전쟁 억지력을 가진 것이 맞다는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2~3년쯤 더 고민해볼 생각이다. - 그 나라는 핵무기 유사 물질을 가지고 있다. - 무기가 스스로 도덕적 관념을 가지지 않으므로 가치중립적인데 강한 나라일수록 그 무기가 선하다고 믿고 싶은 욕구가 있다. - 그래서 주변 강대국은 호시탐탐 그 나라를 노린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생각이 또 있다. 왜 그 나라는 선택받았는가? 무슨 새로운 버전의 선민사상인가?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인가?

좋다. 기왕 억지를 부린 - 나는 억지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지만 - 참에 더 이야기해 보자. 영화의 출생지가 아메리카다. 콜럼버스의 약탈 전초전을 ‘발견’이라고 외치는 오만한 종족의 후손들이 만든 나라. 법정에서,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양심을 말하는 나라. 정교일치가 아니면서도 수시로 정교일치의 속살을 들키는 나라가 이 나라다. 그러니 나는 나의 이런 의심이 충분히 일리 있다고 혼자서 주장해 볼 것이다. 종교의 영역이 흔히 그렇듯이 이건 내 신념이다.

뭐 다 좋다. 어쨌든 주변 강대국은 이 나라를 노리고, 이 나라는 내외적으로 혼란스럽다. 그러는 와중에 바다에서 이 나라가 지닌 핵무기 유사 물질이 발견된다. 탐사 중이던 다국적인들이 습격을 당하고, 배후로 이 나라가 지목된다. 이 나라는 완강히 부정하지만 누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습격의 배후가 과거 영화를 누렸던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후손으로 밝혀진다. 이 후손들은 새로운 핵무기 유사 물질을 가지고, 과거의 영광 - 과거에 받았던 핍박의 복수? 뭐 사실 이런 서사는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상관이 없다. 응보적 정의가 정의로 활개 친 것은 인간의 역사 이전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가 있으니까. 여기서 내가 굳이 시오니즘을 떠 올린다면 기겁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의 오버스러움을 욕할 거라는 불안이 후두엽을 스친다. - 을 회복하려 하고, 그들은 악의 중심이 되어 선의 나라에 맞서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한쪽의 패배를 한쪽이 수용하는 중세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화해하고 “와칸다 포에버~”를 외친다. 다국적인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면서 다시 핵무기 유사 물질이 가진 전쟁 억지력을 설파한다.

파워레인저를 진지하게 만든 유사 버전의 상위 버전인데 다들 얼마나 엄숙하게 이 영화를 추켜세우는지(사실은 ‘빨다’라는 말을 사용하면 비천해 보일까 봐 참는다.) 어이가 없다. 그저 돈 많이 번 회사가 프랜차이즈로 계속 단물을 빨면서 연명해 온 마케팅에 줄을 서서 식당을 가고 있는, 유행의 가운데서 안심하고 있는 군중 심리와 다를 바가 뭐란 말인가?

간단하게 줄이자.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즐기는 드라마를 쓰고, 소비하고, 자기만족을 느끼는 영화,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와서 즐기는 것을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즐길 권리가 있다. 다 취향이니까. 하지만 성 둘레에 매복했다가 불시에 습격하려고 일어서는 병사들처럼 갑자기 일어나 다들 한 마디씩 호사를 바치는 것을 보노라니 괜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한 동안 미드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동안 ( )의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계속될 것이다. 나도 거기에서 독립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3시간 가까운 시간을 그들의 프랜차이즈 식단에 앉아서 최고의 맛집이라고 홍보하고, 하루에도 몇 명씩 일하다 죽어 나가는(재해로 인정받기도 수월찮은) 이 나라에서 나는 외국의 배우 1명의 죽음을 헌사하고, 엄숙을 빠는(기어코 쓰고 말았다.) 그 행사에 동참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그저 내 외골수의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핼러윈도 좋고, DC나 마블도 다 좋다. 다만, 동참과 비동참은 둘 다 즐겨 마땅하고, 인정해야 마땅하다. 무엇을 했든 죽음은 슬퍼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어디 죽음 값이 정해져 있는가? - 사실은 정해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자본은 명(明)도 늘리고 줄이며, 요즘은 자본이 충분히 행복을 산다고 믿는 사람이 흘러넘치니까. - 그래서 그의 죽음을 추모하지만, 딱 그만큼 다른 죽음도 추모하고 싶어 진다. 모든 죽음은 엄숙해야 한다. 빵 반죽기에 끼어 죽은 이의 죽음도 엄숙해야 한다. 그에게는 와칸다의 비브라늄이 아니라 당장의 하루하루 먹고사는 그 삶이 곧 비브라늄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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