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너무 쉽다.
상대로부터 나오는 말을 전부 믿어버리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뒷끝이 있다고 한다. 단지 그때 상대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말했을 뿐인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며 놀라 자빠지는 모습을 보면, 세상엔 무심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다.
학창시절 책 읽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범죄심리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다가와 “이런 책 왜 읽냐, 범죄 저지를 거냐”라고 말했다. 남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자기만 재밌으면 장난이라 생각하는 유형이겠지. 물론 사람을 나에게 맞추지 말라는 법은 안다. 다만, 왜 당신은 나에게 맞춰주지 않냐는 억울함이 생기는 것이다. 수년이 지나도 그 말은 작게 접어 마음속 호리병 같은 구멍에 넣어 탑을 쌓고 있는데, 그걸 모르느냐고. 맞지, 당신은 다르지.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 나도 그렇지.
사람들은 참 특이하다. 바다를 보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수평선이 예쁘다고, 젖어드는 노을이 익어가는 주황빛이 따뜻하다고 한다. 울퉁불퉁하게 무한히 요동치는 파도가 나를 잡아먹을 듯 소리치고, 가끔 발등까지 젖게 하면서 소란을 떠는데도 바다가 고요하고 안정감을 준다니.
윤슬이 빛난다 해도, 그건 바다가 빛나는 게 아니라 햇빛이 8할, 괴랄한 파도의 살인적인 움직임이 2할인데도 윤슬이라며 감정을 얹는다.
그래, 다 다르다.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범죄 저지를 거냐는 말을 독자들에게 하지 않으려고, 어쩌면 그들은 그간 힘들었던 기억의 찌꺼기들을 악랄한 바다에 재물 바치듯 행복을 얻으려는 샤머니즘의 비슷한 행동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나도 윤슬을 좋아하고 재물을 던지러 신발까지 버리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입에 여물을 넣고 씹고 삼키고 뱉기를 반복하는 소도 자신에게 소화를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는 위가 하나라 되새김질을 못하는 건가. 사실 그건 뇌로 하는 건데 말이다. 주름진 미로가 있어 도중에 막히는 생각은 그 자리에 두고 갈 수 있는데, 손이 있다고 굳이 다시 주워 담아 가져가려 한다. 나도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바다를 싫어하고 되새김질하는 뇌를 가지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 절제라는 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닌 듯하다.
군대 소대장이 “너 사회 나가서 이룰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보란 듯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부대에 폭탄이라도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와 다르기에 수십 년 후 한 번 마주칠 그날을 위해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으니 별것도 아니라고 찡찡대지 말라”는 말에는, 존재의 무너짐을 증명하듯 실패를 보여줘야 하나 싶고, “걷다가 죽을 수도 있다”던 대학 교수의 말에는 삶의 소중함을 시한부 환자에게 몽땅 넘겨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걸 알면서도,
나는 너와 다르다고 믿고 싶은 거다.
어른들의 성숙함은 익숙해진 연기로 덮인 미숙함일 텐데, 존경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연기는 무엇으로 보일까. 아기들을 보면 어떤 연기를 알려주고 싶어질까. 어른이 웃음으로 아기를 마주하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나처럼 연기를 덜 하게 해주고 싶은 각자의 고충이 담긴 미소라는 걸 아는데도, 우리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는 이유로 그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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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상입니다.
요즘 시험이 겹쳐서인지 마음이 조금 밍숭맹숭한 채로,
믿음은 미뤄두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탓인지,
그간 여러분이 보내주셨던 고민들도 문득 그리워지네요.
힘든 일이 있어도,
특히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순간이 찾아와도
사람은 각기 다르고,
“너는 유독 그렇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남들과 다른 위대한 인물처럼 바라보면
큰일 난다는 사실,
다들 아시죠?
우하하하하.
오늘도 재밌는 하루 보내시고,
믿음을 통해 불안함을 가볍게 튕겨낼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