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잘 돌아가고 있는 사회를 보고 있자니, 도통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 사는 거라는 것은 단지 본능에만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본능에 충실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적정한 익숙함을 얻는다면 살아감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하셨을 거라 사료됩니다.
저는 특히 언제 그런지를 말씀드리자면, 해야 할 업무를 위해 혼자 카페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 더해 나잇대가 비슷해 보인다면, 족히 20년이 넘은 각각의 경험과 추억으로 자기 자신이 늙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초의 순간으로 수십 년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는 처벌을 받은 모양입니다.
손안에 아늑이 들어갈 만큼 작은 물건으로 사진도 찍고 전화도 가능한 세상이 도래한 지도 스무 해가 족히 넘어가려고 하는데, 뒤처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큰 파도가 각자의 섬을 잠그려 합니다. 완전히 잠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한 번쯤 다녀와야 후회가 덜할 것 같습니다.
저의 특기 중 하나는 터무니없는 세상에 잠시 살아보는 겁니다. 우리는 물고기가 되어 아가미 달린 사람입니다. 어느새 귀를 가득 채우던 커다란 바닷물은 각종 산호초들이 세상을 느끼려는 부딪침의 소리가 되어 나만을 위한 세상을 여는 노래가 될 것입니다. 기존보다 빠르게 파도를 헤엄쳐 보고, 죽음으로 가득 찬 멸치 떼들을 먹어도 보고, 너무 깊은 바람에 수확조차 하지 못한 입 벌린 조개도 캐 와봅시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정말 좋은데 그것이 참 이루기 어려운 환상인가 봅니다. 웃는 법을 알아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부리긴 싫나 봅니다. 되레 우리의 허리가 풀어지지 않게 묶어 놓았던 벨트를 발목으로 가져다 놓진 말았으면 좋겠네요. 걷지도 못한 채 넘어져 철퍼덕 헤엄치고 아가미만 달린 환상의 새소년이 죽기를 바라진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함께 환상 속에 살아보렵니까?
한 번쯤 환상적인 생각을 해봐야 사치라는 것을 부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