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때때로 남이 파놓은 구멍을 채우려는 오지랖을 부려본다. 사람은 각자 다른 자유를 지니고, 같다 한들 양상은 필연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지랖 앞에서는 야속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알아야 한다. 구멍에 무엇이든 넣어 메꾸려는 행위가 새로운 경계의 출발선을 만들어주는 행동이라는 것을. 이후 출발의 자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다시 움푹 파인 구멍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메꿔주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시작이 시작될 테다.
미워하지 말고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니까.
증오하지 말자, 어차피 이해할 수 없으니까.
단기간 미움과 우울을 이해하고자 몸을 내던졌던 시간들의 째깍임은 초침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과거를 위해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행위도,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도 미래의 내가 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유추하는 것, 어떤 말을 했는지를 상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더는 우울에 빠지지 말자.
수년간 바뀌지 않은 인생 멘트를 찾아두었다.
“큰일에만 원칙을 적용하고,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 알베르 카뮈 -
작은 일에조차 이빨을 갈아 넣은 듯 물고 늘어지기를 반복한 내가 얼마나 연민을 부정했는지, 연민의 마음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다 보니 세상이 어느 정도 반가워졌다. 마음의 비만은 다이어트가 필요 없으니 원 없이 먹을 자신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음의 비만도 연민이 어느 정도까지 허락하는지 구분해야 한다. 자칫하면 만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일의 기준을 먼저 정하는 행동을 우선적으로 하자.
몇 번 보이지 않는 거울 앞에서 나를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을 가진 채, 행복만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할래요. 아뇨, 더는 힘이 나지 않아요.” 표정은 일그러지지도 않았고 울먹이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뼈저리게 느껴졌다.
번개에 맞은 것 같은 두통이 오가도 물을 마시며 흐릿하게 타고드는 번개의 느낌을 몸으로 느낀다.
연민을 받아들이자,
사랑을 맡겨보고 되받아보자,
두려움에 확신을 담아보자.
사람은 단순한데 내부는 다양하게 복잡하다.
단순히 “잘 살고 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릴 만큼
단순한 마음을 가졌는데도,
각자 생각하는 기억은 엄청나게 복잡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