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파란 벌레

by 최동준



며칠 전부터 약속해 두었던 샤브샤브 집엔 가지 않았다. 결국 누나와 엄마, 아빠만 갔다. 잠결에 받은 전화로 안 갈 생각이었다. 어제 늦게 잤다며 핑계를 대면, 거짓부렁을 대면 거기로 가지 않아도 된다. 눈치를 안 보게 된다. 그런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가지 않은 진짜 이유는 머리가 너무 길어서 그랬다. 자르고 가기엔 너무 늦었고, 이런 거추장한 머리로 가고 싶지 않았다. 진짜 진짜 이유는 머리 자를 돈도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말을 보고 싶지 않아서 가고 싶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만 집밖으로 나서는 게 쉽지 않다. 기어코 밖으로 나가 긴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은 샴푸 때문이었다. 긴 머리를 감으려면 펌프질을 두 번 해야 했다. 그러면 금방 닳는다. 샴푸도, 돈도 닳는다. 큰돈을 아끼려면 작은 돈을 써야 한다. 딱 한 번을 꾸욱 천천히 누른다. 그것을 머리에 바르고 헹군다. 돈을 청결하는 데에 썼다는 것을 체감한다. 몸이 길고 넓을수록 바르고 헹굴 곳이 많아진다. 아끼면 냄새가 난다. 얼룩이 진다. 보기에 더러워진다.


머리를 자르러 한 시간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탄다. 본가 쪽 미용실에 10년째 단골이다. 의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커트가 팔천 원이라 그렇다. 팔천 원이라는 저렴한 약속으로 사장님은 교복을 입고 벗는 것을, 전투복을 입고 벗는 것을 보셨고, 처음의 마름과 지금의 뚱뚱함을 아신다. 멀리서부터 땀을 닦는다. 눈을 질끈 감고 가위에 미용 도구에 묻을 땀을 모른 체한다. 항상 그랬듯 최대한 공손히 노란 카드를 내밀었다. 염병, 신용카드가 정지되었다. 화실 공방의 엄마가 나에게 급하게 만 원을, 내가 사장님께 팔천 원을 줬다. 그마저도 금세 만 원을 은행이 가져갈까 봐 이리저리 옮겼다. 남은 이천 원만큼 한숨이 솟아, 본가에 걸어가는 동안 오래 토해냈다.


내일 하지정맥류 수술을 한다는 아빠에게 괜한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힘차게 웃으며 현관을 들어섰다. 아빠는 부모가 건강한 게 자식들에게 도움 되는 거라며 꾸준히 운동을 하셨다. 애석하게도 아빠의 반바지 아래로 파란 벌레가 붙어있다. 머리를 감고 나오는 나를 보시더니 더 이상 웃지 않으신다. 소원을 빌듯 배를 쓰다듬지 않으신다. 몰래 쌓아두신 잔소리를 보여주신다. 배 째라 철없는 척을 한다. 아빠는 안방 서랍을 주섬주섬, 나는 신발을 구겨 신고 도망치려고 한다. 닫아버린 현관문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신다. 멀찍이 대립한다. 봉투를 주려는 자와 받지 않으려는 자. 그 아버지의 고집을, 그 아들의 고집을 서로 잰다. 아버지가 이겼다. 나는 졌다. 나는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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