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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Dec 01. 2023

잠들기 어려운 요즘

시험 준비 근황


1.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출퇴근 거리가 그리 길지도 않고, 두꺼운 패딩과 기모레깅스로 꽁꽁 싸맸는데도 살 속 깊이 추위가 파고들었다. 


그런데 퇴근길, 이런 강추위 속에 가을 옷만 달랑 걸친채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걸음걸이까지 몹시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너무 신경쓰여서 집에 들어가다 말고 할머니를 따라가 보았다. 요즘 부쩍 치매로 길을 잃고 헤매는 분들을 찾는 재난문자가 많이 오는데, 혹시 그런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런건 아닐까 해서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 품에서 30년을 보낸 탓인지, 나는 이런 노인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며 따라가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할머니, 어디 가세요?"라고 여쭈었다. 

"그냥 어디 좀 가는 중이에요." 

정정하고 또렷한 말투다. 

안심이 조금 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어 다시, 

"근데 할머님 왜 이렇게 옷을 얇게 입으셨어요. 날씨가 많이 추워요." 

"요 앞에 가는 중이에요."

바로 앞에 있는 큰 건물을 가리키시며 더 이상 말걸지 말라는듯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신다. 내가 관심을 갖는게 부담스러우신 것 같다. 더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어서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는데, 손으로 가리켰던 건물을 지나쳐 한참을 앞으로 또 앞으로 가신다. 


마음만 앞섰지, 결국 아무것도 못한채 뒤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2. 

요즘 계속 잠을 잘 못잔다. 집을 나와 혼자 살게된 이후로 이전처럼 깊은 잠을 자지 못해왔지만,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특히 어제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회사에서 신경쓰이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빠른 일처리가 필요했고, 낯선 과제를 받은 나는 늘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렇듯 고군분투했고, 그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상사분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물론 새로운 부서에 와서 처음엔 많이 서툴렀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걸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에이스가 되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민폐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문제의 일은 어찌됐든 잘 마무리 되었고, 마무리가 되고 나서 상사분께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내 고민을 나눴다. 언짢게 생각되지 않으시면 혹시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알려주시면 안되겠냐고. 솔직히 이렇게 얘기를 꺼내도 될지 오전 내내 고민했다. 혹시나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이 그분에게 불쾌한 일이 될까봐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막상 고민 끝에 말씀을 드리고 보니, 오히려 감사하게도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될만한 조언을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사실, 요즘은 상사가 조언을 하면 "꼰대"라고 낙인찍히기 십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피드백에 목말라 있다. 나는 그런 잘못된 인식이 생긴건 오롯이 일부 상사들이 피드백을 한다는 핑계로 인격모독을 하거나 감정적으로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을 개선했으면 좋겠다, 하는 피드백은 받을 수만 있다면 언제든 감사한 일이다. 오늘 나의 상사분은 내 부족한 부분을 최대한 순화시켜 표현해주었고,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피드백을 주는 입장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짐작되기에, 그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했고 좋았다. 


예전에 작은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 당시 내 상사였던 변호사님으로부터 거의 매일 피드백을 받았었다. 그분은 정말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피드백을 주셨는데, 잘했으면 잘했다, 못했으면 못했다, 라고 명확하게 표현했지만 절대 감정적으로 얘기하거나 내 자존심을 건드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 때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초보였기에 당연히 부족함 투성이일 수 밖에 없었고, 그분의 피드백을 통해서 나는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것을 배웠던것 같다. 그분이 아무리 "오늘 결과물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별로였어요"라고 말해도 이상하게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 내가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 다음부터 고쳐나가야지"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귀찮아서라도 굳이 그렇게 피드백을 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래서 그 사무실에서의 기억이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빠르게 이해하고, 빨리 성장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냥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게 최선이다. 잘 안되는 부분은 노력으로 덮을 수밖에 없다. 


3. 

갑자기 내 주변 환경이 미친듯이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공부를 놓을 수는 없다. 새벽에 일어나 문제를 풀고, 출퇴근 길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에 와서도 문제를 풀려고 노력 중이다(사실 저녁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집중이 안된다느니 하는 것도 결국 말도 안되는 핑계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터질것만 같은데,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해내야 한다. 될까 말까 고민하는것 조차도 사치다. 더 이상 시간을 끌수도 없고, 적당한 때라는 것을 찾자면 그런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냥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다. 지금. 오로지 오롯이 지금에 집중하자. 뜻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길이 있었다. 


4.

유재석의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가사처럼, 정말 인생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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