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일기 Mar 03. 2024

2024년 2월 미국변호사시험 후기

3주간의 시험준비로 응시한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


3일 전, 2024년 2월 미국변호사시험이 끝났다.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포기를 했다가 또 마음 다잡기를 반복했다. 시험 전날까지도 그냥 포기를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꼭 자아성찰 내지는 자아반성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번에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내 스스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으면서 내 스스로를 열렬히 미워했다가 그렇다고 다 그만둘수 없으니 또 다시 나 자신의 열렬한 팬이 되어 응원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래도 결국 시험장에 갔고,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돌아왔다. 가장 힘들었던 날은 에세이 시험 전날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 때문에 식사도 거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날 에세이 시험을 치르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고, MBE 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는 그래도 전날보다는 나아진 상태로 시험을 보러 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나는 금세 또 고통스러웠던 시험 준비기간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직 시험을 준비기간과 시험의 기억이 생생할 때 그 후기를 기록해두고자 한다.


1. 인생엔 변수가 참 많다


7월에 시험을 보고 돌아와서 한동안은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고, 또 그동안 나빠진 건강과 체력을 복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은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고, 10월말이 되어 불합격 통지를 받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DC바에서 최근 많은 정책들이 변하고 있다보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시험접수 기간 중 UDSL 겨울학기 1과목을 신청하여 듣게 되었다. 처음 계획했던 바와 달리 11월은 3주정도의 시간을 학점을 취득하는데 집중하면서 보냈다.


그러던 중 영국행이 결정 되었다. 비자 신청을 비롯한 영국행 준비, 집 이사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새로 생겨났다. 어떻게든 공부를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부랴부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영국행 비행기에 탔을 때 이미 1월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나니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3주 남아있었다. 그 3주를 쉴 것인가 아니면 시험 준비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3주동안에도 영국회사에 적응하고 회식도 하고 영국의 삶에 조금씩 나를 맞춰나가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차피 직장인이 시험공부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는 없다. 사실 직장인이 아닌 전업 수험생에게도 인생의 변수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합격을 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변수들을 뚫고 결국 해내는 것이다. 나는 또 한번 "내 인생의 변수 때문"이라는 핑계로 나의 뜻을 접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어차피 안된다는 얘기도, 괜히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미련을 떨쳐내지 못할것 같았다.


지금만큼 간절했던 적이 없었던 나는 다시 한번 돈키호테가 되어 계획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2024년 2월 미국변호사 시험 당일 DC Armory


2. 시험을 준비한 방법

(1) 교재 및 공부방법


<교재>


교재는 다음 세가지를 이용했다.

- 장수훈 변호사님/교수님의 과목별 내용정리 교재

- KTK 아카데미의 MBE 객관식 문제집

- 스마트바프렙 아웃라인


<공부방법>


시간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정석대로의 방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직 내용이 잘 정리되지 않은 과목일지라도, 일단 객관식 문제부터 보기 시작했다. 객관식문제도 사실상 문제-정답만 보는 방식이었다.


Torts, Contracts는 KTK 무지개 문제집 시리즈를 모두다 보았지만, 과목당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나머지 과목들은 Released Questions&Answers와 Complete pratice exam만 보았다.


Torts, Contracts, Real property, Civil procedure까지는 김기태 변호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문제를 보았는데, 나머지 과목들은 마음이 급해져서 혼자 문제-답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스마트바프렙 아웃라인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냥 보았을 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객관식 문제를 풀고 나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었다. 스마트바프렙은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직장동료의 추천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빈출 문제가 따로 구분이 되어 있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실제로 빈출되었다고 표시된 내용들과 문제집의 문제들이 매치가 되어서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을 떨쳐낼 수 있었다. 이탤릭체는 그때 그때 외우려고 노력했고, Torts와 Contracts는 회사 출퇴근 길에 Tube 안에서 틈틈히 계속 보았다.


DC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몸부림을 쳐보았다


마지막으로 장수훈 변호사님의 내용정리 교재를 보았다. 한글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을 빨리 머릿속에 정리해서 넣기에 매우 좋은 것 같다. 예전에 한림에서 교수님 Evidence 수업을 들을때 Evidence 교재가 공부에 도움 되었던 기억으로 전과목을 모두 구매해서 보았다.


에세이 과목은 스마트바프렙 아웃라인과 장수훈 변호사님 교재를 한번씩 보았다. 기출문제 연습을 하려고 계획했었는데, 뒤로 갈수록 시간이 없어서 결국엔 못했다. MPT도 마찬가지였다.


3주간 내가 본 것은 이게 전부였다. 중간에 힘들다고 나약해진 순간들만 아니었으면 여기서 좀 더 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지만 이번 나의 최선은 여기까지였다.


<스터디>


11월에 스터디를 구하려고 했었고, 한림 스터디에 지원을 했었는데 사정상 온라인으로만 참여가능하다고 했던 탓인지 스터디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에 KTK아카데미에서도 스터디를 하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연락이 와서 지원을 했는데, 몇 분의 연락처를 받기는 했으나 서로들 눈치를 본 탓인지 연락이 이뤄지지 않아 스터디 결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다. 그렇지만 공부든 일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빨리 성장하는 법이다. 나는 머리도 나쁜데다 하루에도 몇번씩 부화뇌동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스터디가 매우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내 상황이 스터디원들에게 피해를 주기 딱 좋은 상황이기도 해서 결국 스터디 입성은 포기했다.

 

(2) 비용


이번에 시험을 응시하면서 든 비용은 총 440만원 정도다.


<응시료, 컴퓨터 등록비용 - 50만원>


응시료는 30만원 정도이며, 컴퓨터 등록비용은 20만원 정도이다. 달러로는 각각 232달러, 150달러이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게이트


<왕복 항공권(히스로-DC) - 140만원>


항공권은 시험 보기 3주전 유나이티드 항공권을 왕복으로 구매했다.


처음에 구매한 항공권은 100만원으로 너무 싸다며 좋아하면서 샀는데, 알고보니 내가 구매한 Basic Economy석은 수하물을 가져가고 싶으면 따로 더 구매해야 하고, 이코노미석 중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선호되는 자리(이를테면 복도쪽 끝자리)에 앉으려면 추가로 돈을 구매해야 했다.


사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미시경제학 교과서 내용 그대로 가격차별을 하는게 수익을 극대화할수 있으니 똑똑한 전략이긴 한데, 자꾸 추가로 돈을 결제해야 하니 자본주의 끝판왕인 미국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컨디션 관리를 위해 추가구매를 해서 복도쪽 끝자리를 샀다. 미국으로 가는 길에는 비행기가 텅텅 비어서 괜히 돈을 썼나 싶었는데, 런던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사람이 꽉꽉 차버린데다 오른쪽 옆자리에는 쩍벌남 아저씨가 앉아서 그나마 미리 결제해서 좌석을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쩍벌남은 우리나라 지하철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덩치도 나랑 크게 차이 안나는 백인 아저씨가 다리랑 팔로 계속 나를 건드리고,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면 자기 물건을 내 자리에 놓기도 해서 돌아오는 내내 몹시 불쾌했다. 그래도 시험보러 갈 때 이런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시험보러 가는 길에는 혹시 몰라서 와이파이까지 돈을 주고 따로 결제했는데, 그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서 다음부터는 굳이 결제할 필요 없겠다 싶었다.


수하물은 책 때문에 필요했는데, 혹시 공부하다가 찾아보고 싶어질지 몰라서(?) 가지고 있는 책을 있는대로 다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갈 때는 유나이티드 직원분이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31kg) 했지만 다행히 봐줘서 추가요금 없이 통과했다. 올 때는 아예 무게 체크도 안하고 바로 통과시켜줘서 역시 추가요금이 없었다.


<숙박 및 체류비 - 250만원>


숙박비는 200만원이 들었다. 시험장 15분거리 호텔에 7박 8일 동안 묵은 비용이다. 레지던스 형태여서 음식도 해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실제로는 음식을 만들어먹을 마음의 여유가 도저히 생기질 않았다.


셋째날 아침 먹은 조식


호텔에서 조식을 주어서 아침은 해결할 수 있었고, 둘째날 16달러짜리 한국 비빔밥을 사먹은 외에 나머지 끼니는 미국에 도착한 첫날 근처 마트에 가서 57달러어치 장 본 것으로 모두 해결했다. 시험 이틀간의 도시락도 이 때 장본 것으로 때울 수 있었다. 그래서 체류기간 내내 식비는 딱 10만원이 들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그리고 시험장과 숙소를 왕복으로 이틀간 왔다갔다 하면서 모두 우버를 사용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안전 문제상 우버를 탔는데, DC에 살고 있는 친구가 DC가 안전해보여도 골목 골목 분위기가 확 바뀌곤 한다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가급적 우버를 타고 다니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마음을 접고 그냥 우버를 탔고, 우버 비용은 총 40만원 정도 들었다.


(3) 시험응시


<시험장 분위기>


2월 시험은 7월 시험과 정말 분위기가 달랐다. 아침에 서는 줄부터 왠지 너무 짧아서 왜 그런가 했더니 응시인원 자체가 훨씬 적었다.


대신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는데, 한줄에 10명씩 앉으면 많게는 그 중 4명이 한국사람인 경우도 있었다. 같은 학교(한동대, 카이스트 등)를 다니시는 분들끼리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서로 의지가 되어 보여서 조금 부럽기도 했다.


미국 현지 로스쿨생들 입장에서는 2월 응시자들은 대부분 재시험자들이어서 그런지 분위기도 훨씬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7월보다는 2월 시험이 더 마이너한 쟁점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어려워서 통과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한다.


시험 응시를 총괄하는 감독관이 본인도 2월 시험에 붙었었다면서, 모두들 다시 시험보러 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는데, 속으로 "나도 제발 그러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시험 후기>


MPT 연습을 단 한번도 하지 못한채 시험장에 들어간 결과, 결국 나는 시간분배에 처참히 실패했다. MPT가 첫날 첫시간 시험이기 때문에 기세를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과목인데, 다시 준비하게 된다면 꼭 MPT 연습을 몇번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비록 첫번째 문제에 지나친 힘을 쏟고 두번째 문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좀 더 자세히 설시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얼마나 논리적인지를 묻는 시험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려고 애썼다.


MEE는 MPT에서 시간 안배를 실패했던 점을 거울삼아 처음 30분동안 6개의 문제를 모두 미리 읽었다. 그리고 한문제당 20분-25분을 안배해서 최대한 생각나는 논거를 열심히 썼다. 4문제는 바로 쟁점이 떠올라서(내가 맞게 생각한건지는 알수 없지만) 기억나는 내용을 최대한 적었고, 한문제는 긴가민가 했지만 어쨌든 생각난 대로 적었는데 집에가서 책을 확인해보니 쟁점 파악은 제대로 된것 같았다. 마지막 한문제가 문제였는데, 내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과목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서 어찌됐든 최대한 생각을 쥐어짜내어 적었다.


MBE 역시 첫시간은 시간배분을 실패하는 바람에, 마지막에 4문제나 풀지 못했다.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던데다 시험 시작하고 30분 넘게 계속 큰 소음이 나서 처음 10문제 정도는 문제를 두번씩 읽었다. 나중에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앉아있으니 한국사람들 얘기가 들려오는데, 미국 친구들은 30분을 남겨두고 다 푼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MBE 첫시간에 4문제나 못풀고 찍어서 낸 여파로 영혼이 가출하기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100문제가 더 남아있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결과가 어떤지는 아직 알수 없으니 끝까지 포기 하지 말자, 이렇게 내 자신을 다독이고 또 다독여 두번째 MBE 시간에는 모든 문제를 적어도 제대로 보고 풀어서 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문제집에서 풀었던 내용과 비슷하게 나온 문제들이 종종 보였다. 연습했던 것 보다 문제 길이는 좀 더 짧았다(아마 더 길었으면 문제를 다 못풀었을 수도 있을것 같다). 첫번째 시간에 시간 안배를 실패했던 것이 너무 아쉽기는 한데, 결국 그것도 나의 최선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것 같다.


산책하는 길에 찍은 DC 길거리 풍경


(4) 체력관리


지난 시험에 비해서는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도 8월부터 1월까지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해두었던게 주효했던 것 같다. 다만, 장시간 비행과 시차 적응까지 모두 커버하기에는 내 체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번엔 8시간 정도 비행하고, 시차도 5시간 차이여서 한국에서 갈 때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비행 내내 공부한다고 잠을 안자고 미국에 가서 내내 제대로 잠을 못잔 탓에 시험 둘째날은 체력적으로 정말 고갈된 느낌이었다.


특히 미국에 도착한 날과 둘째날까지는 아무것도 못하고 앓아 누웠었다. 둘째날까지 기력을 못찾고 누워만 있다가 그래도 고향 음식(??)을 먹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을 사왔다.


그리고 비빔밥 덕분인지, 아니면 꼬박 이틀간 많이 자서 그런건지 나는 둘째날 저녁부터 기력을 회복하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긴장한 탓인지 소화가 되지 않아서 식사를 많이 하지는 못했고 마트에서 사온 과일과 빵, 닭가슴살로 배가 적당히 찰 정도만 먹었다. 조식도 너무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먹었다.


원래 계획은 매일 하루 한시간씩 아침 산책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틀 정도를 빼곤 계속 밖에 나가지도 않고 어두컴컴한 호텔방에서 책, 그리고 나 자신과 씨름했다. 중간에 문득, 내가 여기까지 와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나니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정말 펑펑 울고 싶었는데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정말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준비기간, 그리고 시험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다.  


3. 시험이 끝나고  


이번 시험을 치르면서 내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이번에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내가 쉽게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시 퇴근 후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