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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Oct 30. 2023

시험을 다시 보러 가게 되었다

미국변호사 시험, 불합격 통지를 받다



지난 수요일 저녁, 내가 응시했던 DC Bar의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저녁에 한참 집 청소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메일이 한 통 왔다. "업데이트 사항이 있으니 바시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바시험 홈페이지에 갔는데, 접속한지 두달 지났다고 벌써 비밀번호도 까먹은 상태. 한참 접속에 실패하다가 겨우 접속하여 들어가보니,


"The Committee on Admissions ("COA") regrets to inform you that you were not successful on the July 2023 District of Columbia administration of UBE."

(번역: 귀하는 안타깝게도 2023년 7월 DC 바에 합격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라는 말이 첫줄부터 등장한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과였다. 미국로스쿨 과정을 밟는 동안 시험 준비를 따로 하지는 못했었고, 4월 중순이 되어서야 어떻게든 시험에 응시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공부를 시작했었다. 결정적으로 시험 한달 전에 책을 잡는 날이 그렇지 못한 날보다 더 줄어들면서 시험을 보러 가는게 맞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밀어붙여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시험 일정을 끝까지 소화했다. 


결과적으로 절대적인 공부량이 너무 부족했다. 에세이 연습은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수강중인 강의도 사실 전부 듣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번 불합격으로 인해 나는 올해 연말로 계획해둔 결혼을 내년 초로 다시 미루게 되었고, 적어도 6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다시 지불하여 시험을 보러가게 될 예정이다. 그나마 한국과는 달리 시험이 1년에 두번이라는 점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생이 또 한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같은 페이지에 잠시 더 머무르게 되었다. 


사실 이런 저런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조차도 없다. 시험은 벌써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이 계획을 세웠다. 


- 1차 목표: 11월 25일까지 전과목 기출문제 1회독 마치기

   * 세부 실천목표: 

     1. 평일은 하루 3시간, 주말은 6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기

     2. 자기 전 30분 그날 공부한 내용 복기

     3. 매일 30분 공복 러닝, 주3회 이상 근력운동, 야채와 단백질 위주 식사

     4. (현재 11월까지 잡혀있는 약속 외) 점심/저녁 약속 잡지 않기




오래 전에 BBC에서 만든 야생 염소 아이벡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고지대에서 살아가는 아이벡스는 절벽 꼭대기에 있는 미네랄을 섭취하기 위해서 깎아지른듯한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또 오른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 등반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벡스의 미네랄을 향한 갈증, 간절함이 중력을 거슬러 절벽을 오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BBC 다큐멘터리 "The Incredible Ibex Defies Gravity and Climbs a Dam" 캡쳐화면 


간절함은 그 어떤 어려운 상황도 헤쳐나가게 만든다. 그래서 남은 4개월 동안 간절히 원하고, 간절히 시간을 써보려 한다. 현 상태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지금이다. 


사실, 요근래 마음이 많이 방황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합격 통지는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당분간은 "그 다음"에 대한 생각은 내려두고 시험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여전히 시간은 충분하지 않지만, 시간은 사실 항상 충분하지 않다. 여지껏 살면서 시간이 충분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내게 최선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해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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