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일기 May 02. 2024

심기일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

3월 말부터 한 달간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생애 첫 외국생활에 대한 기대,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생각보다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심한 내적갈등을 겪었다. 


가장 큰 사건은 4월 말에 있었던 변호사시험 합격자발표였다. 3주 동안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욱여넣었지만, 결국 이번에는 허들을 넘지 못했다. 올림픽정신으로 치렀던 첫 시험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시험에는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역시나 아직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3주간 공부해서 시험을 보러 갔던 것에 대해서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깨지더라도 일단 저지르고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향상 이번에 포기하고 가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더 후회했을 것이다. 실망스러운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시험에 패스하지 못한 게 팩트고 내 실력이기 때문에 빨리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다음으로 나를 괴롭힌 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인 영어다. 3월부터 거의 하루종일 귓가에 영어를 때려 박고 있는 중인데, 여전히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한동안은 무척 좌절하기도 하고, 나이 탓인가 아니면 머리 탓인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사실 결국 문제는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은, 언어는 단시간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아래층에 이사 온 레바논 출신의 하우스메이트가 스무 살에 런던에 와서 영어를 지금처럼 막힘없이 하게 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그토록 한 번에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두 명의 직원이 모두 호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면서 내가 유독 호주발음을 알아듣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단시간에 원어민 수준의 스피킹 실력을 얻고 호주발음을 척척 잘 알아듣게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지금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런저런 생각은 떨쳐버리고 될 때까지 계속 영어 공부를 놓지 않기로 했다. 


일의 측면에서도 고민이 컸다. 이 또한 런던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싶었던 나의 욕심 때문인데, 역시나 생각만큼 되지 않으니 좌절감이 많이 생겼던 것 같다. 


3월 내내 나의 극 I 성향과 정반대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기도(?) 했는데, 평소에 안 하던 일들을 하니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다. 그래도 결국 내 성격을 거슬러가며 했던 노력 덕택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그 사이 시험 보고 와서 제대로 쉬지 않은 게 터졌는지 한동안 몸이 아프기도 했고,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운동 계획을 거의 지키지 못했다. 이 부분은 정말 반성해야겠다. 


한동안 저장해 둔 글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져서 글을 다듬어서 발행하지 못했다. 브런치 페이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도 결국 글을 발행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기록을 하는 일은 내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인지라 글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도 무척이나 내 마음을 괴롭혔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 출근 준비 중에 보게 된 유튜브 영상에서 "좌절스러운 순간들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실망스럽고 좌절스러운 기분을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저것 재거나 생각하지 말고 우선 지금은 그냥 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이방인, 그리고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