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첫걸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드디어 멀게만 느껴졌던 난임병원 첫 예약일이 다가왔다.
나는 삼십대 초반부터 난임에 대한 걱정을 늘 머릿속 한켠에 두고 있었다. 아주 어릴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십대 때부터 일찍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늘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혼 자체만 생각한다면야 굳이 급할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아이를 꼭 낳고 싶은 입장에서는 신체적, 물리적 여건이 시간적 한계치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걱정도 불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임병원에 방문했을 때 나는 이미 삼십대 끝자락에 와있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난임병원에 들어서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 병원을 통해 시험관 임신에 두 차례나 한방에 성공한 친구의 소개로 온터라, 그래도 어떻게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반, 그리고 어느새 너무 많아져버린 내 나이로부터 기인한 두려움과 잔뜩 위축된 마음 반이었다.
친구가 시술 받았다는 선생님은 노산인 사람들에게는 여과없이 현실을 알려주시는 스타일이라고 하여, 인터넷에서 알아보아 친절한 것으로 소문난 선생님 진료를 예약해두었다.
드디어 예약한 날 아침. 아침 10시 예약이었기에 8시 50분쯤 도착을 하면서 그래도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평일인데도 진료실 앞 자리가 빽빽하게 차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참을 어정쩡 하게 서성이다가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다.
9시 예약이 무색하게도 내 앞에는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이미 대기중이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하는 얘기들이 들리는데, 지방에서 이른 새벽 기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왠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엄숙한 분위기여서 남편과 '다음엔 꼭 일찍 오자'는 필담을 나누며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 애썼다.
기다리는 사이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리가 병원에 방문한 목적을 물었고, 우리는 난임 검사도 받고, 난임 시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 10시 반쯤 되었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 안에 들어가니, 큰 책상 위 모니터 앞에 아이돌이나 학원 강사들이 많이 하는 이어마이크를 착용한채 앉아계신 선생님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 목소리가 왜 그리도 바깥에 울렸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봐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목을 보호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등장하자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는 선생님과 마주보는 자리에, 남편은 그 옆자리에서 모니터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도록 안내했다. 선생님은 잔뜩 긴장해있던 나에게 서글서글하게 웃는 인상만큼이나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XX님. 난임 시술을 생각하고 계시다구요."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내가 병원에 온 목적을 설명했다. 나이가 많은 터라, 결혼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바로 난임병원으로 왔노라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그리고 현재 내 상황이 어떤지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시험관시술을 할지, 아니면 자연임신 시도를 조금 더 해봐야할지 그때까지도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도 솔직하게, 내가 아직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 못했노라고 밝혔다.
그러자 선생님은 개인차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내 나이에 자연임신 확률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그러니 각종 검사를 해본 뒤에 몸상태에 따라서 일단 자연임신 시도를 먼저 해볼 것인지, 다른 시술들을 고려해볼지 얘기해보자고 했다.
의학적으로 내 나이에 자연임신이 되는 것이 꽤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병원에 와서 직접 들으니, 다시 한번 마음의 불안감이 출렁였다. 당연한 사실이고, 이미 아는 사실인데도, 병원에 가서 선생님 앞에 앉아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실감을 하지 못했던것 같다.
진료실에서 나와 바로 혈액 검사를 받았다. 다른 검사들은 생리 시작 후에 와서 받아야 한다고 해서 다음 예약날짜를 잡았다. 남편도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검사 예약을 했다. 원무과에서 정산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어느덧 점심 때가 다 되었다. 긴장도 조금 풀리고, 남편과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각오를 다지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부랴부랴 회사에 오후 출근을 했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앞날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정말 간절했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