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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Oct 06. 2024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기억해야 피할 수도 있잖아


써놓은 것들은 빛바래질 지언정, 영원히 사라지진 않는다.


   

    '이게 몇년 만이니?'


    오랜만에 만난 2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에게 들은 말이 아니다. 이곳 브런치에 글을 쓴 마지막 글을 보며 내가 스스로 내뱉은 탄식. 그 때가 무려 약 2년 전이다. 정확하게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31개월 전. 심지어는 그것도 코로나 시즌에 갑자기 자가격리 한답시고 올스톱된 하루가 여간 공허해서, 이참에 쉬어보자는 얘기를 돌려 돌려 써내려간 글이었더란다.


가장 최근 두 글의 키워드가 '코로나'와 '퇴사'라니... 대체 언제적 일이냐고(!)

    



   내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사실 일종의 배설(排泄)이다. 이런 공간에 글을 쓰면 나만 읽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읽게 된다. 다소간 후진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게 여간 쑥스런 일이 아니다. 어디 벗겨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따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 모자란 나의 우주를 배회하는 몇몇 글자들을 주워담았었다. 추한 것은 추한대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대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추하면 반성할 것이고. 아름다우면 잊지 않을 것이니까.


    멀끔한 듯 치장하고 살아가나 매일 화장실을 들르지 않는 사람이 없고, 화장실이라 불리우는 은밀한 공간에서 소위 ‘큰 일' 들을 본다. 그렇지 않으면 ‘병’이 되지 않던가. (남사스러워 굳이 ‘변비'라고 표현하진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정확히 하는 편이 좋겠다.) 나라고 별다를 일 있나. 똑같은 인간일 뿐. 그러니 돌아보면 모든 건 이기심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몸뚱이 하나 어디 결리지 않고 싶어서, 조금도 아프지 않고 싶어 쓴 것이다. 약간 더 보태 욕심부리면 씀으로써 속시원해지고 싶어서.


...나도 나를 잘 몰라서 더 써야만 했다.




    글을 쓰지 않은 지난 수년은 요새 유행하는 흑백요리사를 볼 때 느껴지는 시간의 감각 같았다. 오늘 급식이 뭔지 누가 생존이고 탈락인지를 가늠하다 보면, 두세시간도 우습게 간다. 한국엔 대체 언제 있냐는 말을 들을 만큼 분에 넘치게 세계를 누볐고, 하도 염원해서 까먹었던 목표들도 이뤘지만. 동시에 세상이 떠나가라 밤새 울었고, 수 시간 동안 한강변을 홀로 걸으며 생각을 비우고 또 비워야만 겨우내 잠이 드는 날들도 지샜다.


    기억 어딘가에 남겨질테니까. 그래서 필사적으로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5년 전의 이맘 때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 때의 10월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많이 웃고 행복했었나. 애처롭고 괴로웠었나. 세상 떠나가라 웃었을까. 닭똥같은 눈물도 흘렸던가. 그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굳이 5년을 시점으로 둔 건 어디선가 본 아래 한 문장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힘들 건,
5년 뒤엔 생생하게 기억하기도 어려운 것들이다’




결국 다 허송세월로 바빴다. 쓰지 않으면 그렇게 삶이 초라하게 갈무리되고 만다.


    맞다. 쓰지 않으면 결국 사라져버리고 만다. 좋은 것도 금방 휘발되어 명확하게 회상하기 어렵다. 나쁜 것도 사라져서 반성할 것도 없다. 그러면 기억만큼 나란 사람도 그렇게 뭉뚱그려져 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걸 오래 기억하면 그 사람은 아름다울 것이다. 추한 걸 기억하면 무엇이 흉한지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피하고 조심하며 살 것이다. 그래서 못볼 꼴 안볼 꼴 상관없이 써야만 하는...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다운 사람이란 이 땅 위에 없고, 그만큼 추한 사람도 없다고 믿는다. 중요한 건 아름다움을 귀히 여겨 오래 간직하고 자신의 누추한 부분도 굳이 기억하기 때문에 애써 피해가며 살고자 노력하는 것. 그 때의 그 사람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 나는 내가, 우리가 각자 다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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