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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26. 2018

떠나자! 익숙한 건 재밌지 않잖아

스물 셋 꿈을 꺼내다


떠나면 모든 것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때는 2013년 2월 6일, 배불리 한 살을 더 먹던 바로 그 날. 스물세 살이 됐다는 것이 왠지 낯설어 하루 종일 내면적 멘붕(멘탈붕괴)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였다. ‘가만, 어디 보자. 나는 오늘부로 스물셋. 이십 대 초반이라 주장하기에도 왠지 모를 용기가 필요한 시기. 올해가 지나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는 동기 친구들도 만나게 되겠구나. 아, 갑자기 달달한 초콜릿이 먹고 싶다. 흑흑.’


  기분이 울렁울렁할 때면 항상 당분 가득한 초콜릿이 필요했는데, 그때가 바로 최고조였다. 한 해 두 해 덥석 오르는 나이에 어느덧 졸업은 가까워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도 묵묵히 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주던 열정의 근육들은 뒤룩한 지방으로 변질돼버린 듯했다. 가장 탈피하고 싶었던 건 ‘익숙함’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환경의 익숙함, 만나는 사람들의 익숙함, 접하는 경험들의 익숙함… 너무나 익숙해서 너무도 자극적이지 않은, 그래서 무지하게 심심한 바로 그 익숙함! 하루빨리 익숙함의 구렁텅이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나오고 싶었다.


  때마침 개학까지는 한 달가량 남았고… 어차피 학기를 맞이하기 전 다시 새롭게 목표 설정도 해야 할 때였다. 연초에 구매해놓고 책장 위 예쁜 액세서리 신세가 된 올해의 다이어리도 새로운 자극으로 당신을 메꿔 달라고 자꾸만 애교 섞인 눈짓을 보낸다. 좋았어! 더 늦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대학생활을 더욱 빛내줄 기회를 스스로에게 마련해주자. 그동안 묵혀왔던 바람들을 실현시켜 보는 거야!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는 잡지 못하고 있었던 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에게 있었다. 딱 일 년 전 이 맘 때 준비하다가 끝내 실현하지 못했던 어학연수를 이번엔 꼭 다녀오고 싶단 욕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덧 대과거가 돼버린 일이지만, 내겐 최종적으로 비행기 발권까지 했었을 정도로 나름은 확고했던 연수 계획이 있었더랬다. 재작년 가을학기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유학원에 홀로 상담을 받으러 다닌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그러던 중 웬걸,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한순간 마주치게 된 집안 사정으로 인해 나는 출국을 며칠 앞두고 모든 걸 포기해야 했다. 비행기 표 환불부터 시작해, 유학원과의 재 상담, 대형 캐리어에 쌓아둔 짐 푸르기 등…. 찬란했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돼버린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처리해야 일들은 어찌나 보란 듯이 산더미 같던지.


어찌 됐든 시간은 흐른다.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소중한 지금을 선물해준다.


  이래저래 밀려오는 당황스러운 상황들에 한참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어학연수는 커녕 학교 복학마저 잠시 미뤄둬야 했고, 힘든 일이 지속되는 만큼 나에 대해 혹은 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갔다. 그땐 그렇게 괴롭고 속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벌써 이따금 흘러버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놀랍기만 하다. 물론 시간이 ‘쏜 살’처럼 화려하게 지나갔다고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 시절 그 순간 나는, 내 짧은 생 가장 가슴 먹먹했던 시간을 마냥 이겨내야만 했었으니까. 그러나 어찌 됐든 시간은 흐른다.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소중한 지금을 선물해준다. 간절한 바람과 옹골찬 희망을 함께 품고서.


  아무래도 스물셋 내 청춘은 조금 더 반짝반짝 빛날 거라는 신호탄이었을까? 생일이랍시고 잡생각에 한껏 몰두해보면서 이만큼이나 많은 긍정적인 생각의 순환을 거치는 걸 보니 꼭 어른이 된 듯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보다 어른스럽게, 나도 본래의 내 길을 걷기 위해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네 꿈을 펼쳐보렴!’ 가슴 저 깊은 곳에 한참 숨 죽어 있었던 용기도 다가와 슬며시 귓속말을 보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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