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멀쩡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
타인의 시선을 끔찍이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여자나 남자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대범하지 못한 사람인지라 되도록이면 그들로부터 시선을 비껴 바닥이나 먼 산을 쳐다보며 가렵지도 않은 뒤통수를 공연히 긁적이지만, 가끔 마음이 내키는 날에는 그들을 대놓고 쳐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 시선에 한껏 고무되어 더 격렬히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선을 비끼곤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은 멀쩡하게 평소대로 행동했던 것인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나란 인간은 도대체가 왜 이 모양인 건지 가끔 나 혼자만의 엉뚱한 상상으로 혼자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다.
'저 사람, 보아하니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어. 본인이 평균보다 월등히 잘생긴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해.'
-못난이 스눕피 학생-
대학 시절을 예로 들면 수업 중에 자꾸만 강의실 안팎을 자주 들락거리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리면 강의실에 모여 앉아 각자 딴짓에 열중하던 학생들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구두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흘깃 그(녀)를 쳐다보곤 했다. 그들은 정말 급히 볼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거잖아?), 나는 상상력이 카푸치노 거품처럼 풍부한 사람인지라 혹 그들이 오로지 자기에게로 관심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쓸데없이 의심하기도 했다.
또한 팀 프로젝트의 발표 수업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훨씬 멋지게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잘 갖춰 입은 친구들이 포디엄 앞에 올라 눈을 부릅뜨거나 목을 가다듬으며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강의실 앞으로 뛰어가 당장이고 "오늘 당신 멋져요, 멋지다고요. 그러니까 그만!"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기세를 억누르고 싶었다. 어지간히도 비정상적인 인간인 것이다.
아마 다음의 사례들은 모두가 비슷하게 공감할 지점의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을 자꾸 늘어놓는 친구와 마주 앉아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의 그 난처한 기분이나, 지난번에 분명 서너 번은 넘게 말했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그것을 똑같이 반복하기 시작하려는 친구의 입술을 쳐다볼 때의 그 민망한 상황, 다음에 자기가 할 말을 준비하면서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있는 친구의 어색한 얼굴 표정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할 때의 그 허탈한 감정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어떻게 보면 아주 아주 아주 별 것 아닌 일들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상상하고 평가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아주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니까. 정말이지 이렇게 글로 써 갈길 가치도 없을 정도로 아무 일도 아닌 일이니까.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아포리즘의 대가 '아귀' 선생님-
약 14년 전, 영화 <타짜>의 등장인물 아귀 선생님은 정마담 선생님을 두고 "에헤이,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라고 말씀하셨는데, 영화를 처음 볼 땐 그것이 나 같은 멍청이를 두고 한 말이라곤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A...18...
음, 내 인생은 앞으로도 가끔씩 왈칵 피곤할 것이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런 벌을 내리시는가! 씁쓸한 토요일 아침이다.
*프런트 이미지 출처: Peanuts Carto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