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Jan 06. 2020

다 잊고 작가 샐린저로 남겨두련다.

영화 <샐린저>, 인간 샐린저에 보다 더 가까이, 구체적으로.


수많은 청춘의 한때를 무자비하게 빼앗은 치명적인 작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You Got Me!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중학 시절, 스눕피의 MP3 플레이어 속에 숨어 들어가 보습 학원 등원 시간을 무자비하게 빼앗은 The Roots의 앨범 <Things Fall Apart>의 수록곡 'You Got Me'로 아래 감상평의 전체 무드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을 2주째 생략한 죄책감을 덜어봅니다.

"Baby don't worry you know that you got me."

-The Roots 'You Got Me' 중에서-


* 영화를 극도로 집중해서  이후, 인근 카페로 넘어가 마치 암기 과목의 시험 범위를 달달 외워 시험지 위에 고스란히 뱉어내는 안타까운 중등학생처럼 글을  갈겼습니다. 실제 사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 감상 직후의 격앙된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대부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medium.com)


누적 6,000만 부 이상을 팔아 치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책의 특징은 뻔합니다. "이름은 들어 봤지만 정작 한 번도 안 읽어봤다"라며 들고일어나는 사람들이 넘쳐흘러 마치 그 많던 싱아처럼 그 많던 책들을 누가 다 먹어치워 버린 건지 의문을 품게 하는 수상쩍은 책들이죠.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어쩌면 꽤 다행인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호밀밭의 파수꾼 읽어봤어?”, “아니, 안 읽어봤는데.”의 대화로 시작해 “어? 웬 책이야?”, “저번에 호밀밭의 파수꾼 안 읽어봤다며, 자, 선물이야!”로 끝맺는 대화가 이어지며 어떤 이성 친구들의 사랑과 어떤 동성 친구들의 절교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을 테니까요. 사귀고 헤어지고 사귀고 헤어지고. 아, 참고로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고 상상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작가 ’샐린저’의 은둔 생활과 존 레넌의 살해범 마크 채프먼의 정신세계를 장악했다고 알려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엉뚱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익히 들어봤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저도 그 정도의 배경 지식을 탑재하고 영화 <샐린저>를 감상했습니다.


Mark David Chapman (출처: NY Daily News)


<샐린저>는 작가 샐린저의 개인사를 구구절절 읊는 영화입니다. 따라서 <샐린저>는 누군가에게는 보물처럼 소중한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 긴 자장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물론 전자였습니다. 위대한 작가의 일대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자기계발서'와 같다고 생각해 온 그릇된 버릇 때문입니다.


샐린저는 ‘치즈’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들인 유대계 아버지와 가톨릭 신자 어머니(결혼 후 아버지를 따라 유대교로 개종)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굉장히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편입니다.

샐린저는 학교에서 적응을 못했고, 아버지는 그런 그를 사관학교로 보내버립니다. 그곳에서 그는 정신을 새롭게 개조합니다. 그리고 2차 대전에 참전합니다. 병역 이행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몇 번의 설득과 증명 끝에 입대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는 점잖은 인생과 허례 그리고 가식을 싫어했습니다. 이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전쟁터에서 299일을 보내고, 그는 복무 연장을 신청하여 방첩부대원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던 중 ‘나치’ 활동 전력이 있는(있다고 의심되는) 독일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 첫 모순의 시작이었습니다.


샐린저의 첫 부인이었던 독일인 Sylvia Welter (출처: dianoratinti.it)


그는 줄곧 십 대 중후반의 여자들과 만나 정을 나눴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체험한 이가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 자구책으로 선택한 '순수’에 대한 동경과 집착이었든 정신병적인 것이었든 그는 나이를 먹고서도 고집스럽게 십 대를 사랑했습니다. 샐린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졌지만, 아이를 낳은 그녀가 '어머니'가 되었다는 당연한 이유로 그는 정을 뗐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돌보지 않고 벙커에 틀어박혀 글만 써댔고, 또 다른 십 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때론 함께 살았습니다.


무려 53세의 샐린저와 동거한 18세의 예일대학 학생 조이스 메이나드 (출처: Vogue)


샐린저는 자기 시대의 모든 작가는 엉터리라고 생각했으며, 포스트 ‘허먼 멜빌 ‘자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로서의 그는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뉴요커>지에 작품을 싣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없이 원고를 보냈고, 수없이 거절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물론 나중엔 성공했습니다.

문장에 쉼표를 하나 더했다고 편집자에게 악을 쓰고, 제목을 고쳤다고 친구와 절교를 하고, 글쓰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가족을 등한시한 그는 지독한 완벽주의에 젖은 작가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샐린저의 역작 <호밀밭의 파수꾼>은 2차 대전의 현장에서 작성되기 시작한 책입니다. 그렇기에 샐린저와 함께 가장 힘든 시간을 견뎌낸 소설 속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곧 샐린저 자신이었습니다. 홀든 콜필드를 욕하면 그는 화내고 울었습니다.


(출처: AnOther Magazine)


<호밀밭의 파수꾼>은 시대를 거듭하며 전 세계 모든 청춘의 '나'를 대변했습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내 생각이
이 책 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을 노란 형광펜으로 칠하기 시작했더니 나중엔 책의 모든 문장이 노란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었다는 영화 속 어떤 인터뷰이의 증언처럼 말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야말로 신드롬이었습니다. 60년대 청춘의 바이블이었고, 악랄한 살인범들의 주요 살해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샐린저는 간절히 유명해지길 원했지만, 정작 유명해지자 그것에 신물을 느끼고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은둔 생활은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가장 획기적인 방식의 자기 홍보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는 숨어 지냈지만, 밖으로 나와 친구들도 만나고 웃고 떠들며 놀았습니다. 아무튼 그는 조용히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출처: The Spectator)




그의 집에 찾아가 인생 조언 한 줄을 들으려다 허탕 친 수많은 젊은이들, 하지만 운이 좋은 몇 명은 그와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됩니다. 샐린저는 말합니다.



나는 카운슬러가 아니라 작가란 말이오!




인간 샐린저가 아닌 학창 시절 여러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전설적인 작가 샐린저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영화를 보지 않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유이니까요. 말리진 않겠습니다.




[프런트 이미지 출처: Hollywood Reporter]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멜론 플레이리스트 따위 하나도 안 궁금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