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계정 'dudewithsign'을 보고 제가 느낀 게 많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듣고 싶을 때 듣고 싶은 음악을 어디에서나 손쉽게 찾아들을 수 있는 지금 이 시대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가 '어두워지면 무료함에 잠이 들고, 밝아오면 부지런히 걷고 뛰다가 지금 당장 죽도록 듣고 싶은 음악을 입으로 흥얼거리며 안타까워하던 인류 역사'를 배반하는 반칙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또한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그림이나 영화, 드라마, 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다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나 감사하기에 도리어 속된 말로 '개-사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사기'와 같은 현실에 굴복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인간들은 요즈음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자기 표현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들어오는 게 있으면 그만큼 나오는 게 있어야 균형이 맞춰지는 존재이니까.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이 지나쳐 피곤한 이 시대에는 '태클'을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 같이 정도를 모르고 남의 생각, 나의 생각을 부지런히 퍼 나르며 생각 쓰레기를 남기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래퍼의 패션, 좋아하는 외국 가수의 내한 공연 실황,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의 신상품 화보, 인터넷에 떠도는 나 혼자만 웃긴 콘텐츠, 나 혼자만 감동한 소설 속 문장, 나 혼자만 좋아하는 음악 등의 극히 주관적인 관심사를 카카오톡 채팅방에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사람의 하나로서 인스타그램 계정 'dudewithsign'의 다음과 같은 포스팅은 나를 머쓱하게 하였고 심지어 지난 몇 년간의 소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한 사람의 타고난 무감각함이나 선택적 무신경함은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본의 아니게) 현명한 처세나 미덕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래서 도대체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또는 '아무 문제없으면 된 거 아니야? 난 또 뭐 대단한 일이라고...'와 같은 마음가짐이 지배하는 삶이란 (본의 아니게) 꽤 따분하고 지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이렇게 그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는 태도는 결국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을 테니까.
이 세상에는 주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불편한 점을 콕 꼬집어 혼내줄 수 있는 예민하고 불편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역시 표현의 방법이다.
나는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는데, 광고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4년 동안 'What to Say'와 'How to Say'에 대하여 지겹도록 배우게 된다. 말 그대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문제 말이다. 대학 시절, 우리가 나름 치열하게 준비한 광고 기획 발표를 조용히 듣고 나서 교수님들은 늘 이렇게 묻곤 하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대충 알겠는데, 그래서 정확히 무얼 말하고 싶은 거지?"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는 대충 알겠는데, 정확히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라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평가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처음에는 툴툴거렸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고개를 주억거리곤 했다. 사실 교수님들의 모순과도 같은 이 말씀은 사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도 부족하다.'에 대한 극히 우회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호흡이 긴 문장이 먹히지 않는 시대인 건 자명해 보인다. 아무리 탁월한 생각도(What to Say) 문장이 길어지면 읽기 싫어하는 것이(How to Say) 요즘 사람들의 현실 취향인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짧은 문장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려 노력하는 이들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은 그러한 짧은 문장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가상한 노력의 결과로 무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다. 물론 호흡이 짧은 문장이라고 해서 그것을 만들어 낸 기반 생각마저 짧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빈 담뱃갑을 집어던지는 광고대행사의 훌륭한 카피라이터들이 그것을 증명해줄 수 있을 테니까.
인스타그램 계정 'dudewithsign'의 포스팅은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가 분명하고, 누구를 위한 말씀 인지도 명확하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투박하기에 도리어 세련되었고, 고도로 계산된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장인물들의 배치는 꽤 재미있고, 대비되는 그들의 감정은 사진 밖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인스타그램 계정 'dudewithsign'의 포스팅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 위해 모든 크리에이터들은 사람들의 소셜 행동 일체를 분석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교훈 하나, 그리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교훈 둘, 그다지 새롭지 않은 메시지일지라도 소셜미디어 위에서 지지고 볶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현장성'은 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법이니까. 교훈 셋은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들여다보려는 삐딱한 태도를 일상의 한 켠에 마련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교훈 넷은 구구절절 길게 이야기하며 진을 빼느니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짧고 담백하게 그리고 투박하게 던져야 한다는 것. 너무 세련되고 정제된 문장에 사람들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쳤으니까.
인스타그램 계정에 우연히 들러 붕신처럼 킥킥대다가 무언가 내 생각을 남기고 싶어 이렇게 글 하나를 싸질러본다. 이 포스팅을 읽어 내려가며 아주 조금의 영감이라도 얻어 가는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아, 무엇보다 큰 영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