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Dec 24. 2020

순간의 선택들

후회합니까? 최선입니까? 스눕피입니다.



2008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1교시, 언어 영역. 문제 서너 개 딸린 긴 지문 하나에 몇 분인가를 낭비했다. 아, 시팔! 1분 1초가 아쉽다는 수능에서 몇 분인가를 낭비한 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내년 수능을 준비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버이, 죄송합니다. 1교시에 재수를 결심하는 불효자를 용서하소서.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웃포커싱 되었던 정신이 돌아왔고, 주변도 보이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샤프 소리. 찍찍, 마킹 소리. 집중하는 학우들의 뒤통수가 내뿜는 향풀이열까지. 앗! 뜨거워. 지들이 찐 감자라도 되냐규!



수능은 확실히 문제가 깔끔해.

너희 선배들 보면 말이야,
보통 모의고사 성적보다는
수능 점수가 더 높게 나오더라!

-센세-



선생님, 왜 제게 구라를 치셨습니까. 왜요!

역시 내게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구나.

대신 나는 다음과 같이 새로운 전설을 하나 쓰게 되겠구나.




너희 1년 선배 하나가 있었는데, 스눕피라고.
그 녀석이 수능날 완전히 죽 쑤고 왔잖니.

언어 지문 하나에 몇 분을 낭비했다더라?

지금은 그놈 대학도 못 가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종일 빌빌거린대.

-센세-



하지만 나는 이른 나이에 벌써 전설을 쓰고 싶진 않았다. 따라서 나는 재수하지 않았고 적당히 타협해 이듬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대학진학율을 기록했다는 그 해에 나도 무려 대학생이 되었다. 우하하! 그렇게 시작된 별안간의 대학 생활, ‘인연’이란 이름 아래 엮인 대학 사람들, 그들은 대부분 착했고 성실했다. 또 숫기 없고 말수 없는 바보 같던 나를 과묵하고 젠틀하다는 말로 포장도 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사람들. 많이 늦었지만 땡큐!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낭만적이다. 비록 그 순간의 선택 때문에 안 봐도 될 꼴을 보고,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시팔 거리며 노상 툴툴댔지만, 그 순간의 선택 때문에 다시없을 인연을 만들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며 기쁘게 울고 웃었다. 캬캬캬!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면서요? 정말 맞네요!


내가 언어 영역을 좀 더 잘 봤더라면 저들의 환한 미소 그리고 지나친 친절과도 못 만났을 거다. 물론 지난 시간 날 스쳐간 아름다운 여인들의 따뜻하고 작은 손도 꼭 못 잡아봤을 것임은 분명하고. 그래서 나는 지난 순간의 선택들을 안 바꾸고 싶다. 어차피 못 바꾸지만;;; 가슴 사무치는 나의 옛 추억을 대체할 다른 추억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하기도 싫다. 없는 걸로, 아니, 없었던 걸로 치겠다.

내 인생이고 내 삶이니까 억지로 긍정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숱한 순간의 선택들을 매번 증오하고 후회하지만 또다시 내일 아침 눈을 떠 세수하고 이빨 닦으며 새로이 정신 차려보는 모든 이들의 성실함. 그래서 인생은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마음대로 척척 풀려서가 아니라, 모든 순간의 선택이 적시여서가 아니라 산 꼭대기로 오르는 삶의 앞길이 자꾸 막혀서 자구책으로 옆길을 트며 간신히 기어올라왔는데, 그때 나와는 다른 옆길을 힘겹게 헤치며 함께 올라온 사람들의 미소가 바보처럼 아름다워서. 저 멀리 내다보이는 세상의 풍경이 마음 안에 막연히 품었던 못되고 자학적인 상상 속의 그곳보단 꽤 괜찮아서 그래서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성숙한 척하지만 실상 정말 철없는 사람. 내가 정의 내린 31살 12월의 나. 책임감을 운운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약속들로부터는 은근히 시선을 비껴왔다. 은근히? 아니! 의도적으로! 결혼은 아직도 남 얘기 같고, 아버지나 어머니보다는 엄마나 아빠가 더 편한, 매사 쿨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나약하고 더럽게 치사한 인간. 그래서 누굴 가르치려 들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 든다. 내 앞가림부터 잘하자고 지겹도록 다짐한다. 자의식 과잉에 남 눈치 과잉!

2008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친구들 예닐곱 명이 안면도 펜션으로 1박 2일을 놀러 갔다. 숙소 안에 틀어박혀 소주며 맥주며 담배며 미친 듯이 즐겼다. 홍초를 타 먹는 소주 맛이 너무도 괜찮아서 정신줄을 놓고 음료수처럼 마셨더니 뒤탈이 왔다. 너무 어지러워서 바닥에 몇 번이나 넘어졌다. 그러면서도 아픈 줄 모르고 실실 댔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렇게 끝내주는 일이라니! 이런 즐거움을 그들만이 누리고 있었다니! 그때 나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각하면 지는 거였다. 곧 대학생이 될 거였고 어른이 될 거였으니까. 인생이니 고생이니 낭만이니 아름다움이니 그런 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한 나의 치기 어림 또한 순간의 선택이었다. 누구나의 인생 한때를 지배하는 무한한 자유와 객기의 시간, 그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던 걸까.

요즘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이라도 살 때면 내가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진다. 알바 센세들도 내게 더는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달란 소리를 하지 않는다. 두껍고 하얀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나의 연식 탓일까. 나이에 비해 꽤 젊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일까? 응! 아무튼 증명은 진실을 지치게 한다고 어떤 책에선가 읽었는데, 내 나이를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 나의 액면가라는 것이 빼박 진실인가 보다. 에휴~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나는 오늘에 이르렀다. 특별할 게 없는 일상과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지만 딱히 만족스럽지 못한 매일매일.


내가 내 삶을 형용하며 즐겨 쓰는 표현이 하나 있다. ‘주관적으로 되게 열심인데, 객관적으론 되게 별로인 인생’. 하지만 어쩌랴. 이게 내 인생인 것을! 허허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다음에 어떤 문장을 꺼내 써볼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선택한다. 순간의 선택! 좋았어! 오늘은 12월 24일이니까...



머레이...

아니...

메리...
크리스마스...

에브리원...


매거진의 이전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스크루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