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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06. 2021

환갑 엄마의 임영웅 사랑

임영웅 트로트의 등장은 적시다.


우리 엄마의 나이는 1961년생으로 올해로 만 60세 환갑이다. 엄마는 요즘 임영웅 선생님에게 푹 빠져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뒤틀려 박힌 쇠못이나 유리병 속에 쏙 들어가 버린 삶은 달걀처럼 빠져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내가 박수홍 선생님의 어머님은 아니지만 "우리 엄마가 왜 저럴까?"


얼마 전에 엄마를 조수석에 태우고 왕복 3시간의 운전을 이틀 동안 했다. 마음 같아선 미국 힙합 음악을 듣고 싶었으나 출발 직전 힐끔 내려다본 엄마의 스마트폰 속 인스타그램 피드가 '임영웅' 관련 콘텐츠로 도배되어 있었기에 나는 알파벳 D를 P로 바꾸고 멈춰서 즉각 유튜브 뮤직을 실행했다. 그리고 임 선생님의 노래를 전체 재생했다. 눈치가 없다면 한국인임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내 오랜 생각인 데다가 자유 시간이면 노상 귀에 달고 사는 힙합 음악을 3시간쯤 포기해볼 수 있는 기회도 그리 흔하진 않으니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이틀간 이어진 왕복 3시간의 운전, 나는 총 6시간 동안 엄마의 <영웅학개론> 혹은 <임영웅원론>을 강제 수강하였고, 내친김에 진도도 다 뺐다. 그의 데뷔 초 일화, 미스터트롯 경연 무대의 단계별 심사평, 가족 관계, 어린 시절의 상처, 신장, 대학교와 전공, 취미(축구) 등을 가볍게 마스터한 것이다. 엄마의 입은 쉼이 없었고 얼굴은 자주 상기되었다. 한편 나는 손이 시려서 히터의 온도를 23도에서 24도로 올렸다.



나는 운전하면서 생각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가 영원한 소녀라는 걸 몰랐던 바 아니지만, 지독한 지루함을 친구 삼아 매일이라는 세월을 견뎌낸 환갑 엄마의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음에 정말로 기쁘다고. 물론 내가 임 선생님을 우리 엄마의 남자 친구로 허락한 일은 없다. 잠정 보류 상태랄까.



올해로 서른두 살을 까먹은 나의 초중고 시절, 학교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직업을 자주 물었다. 그때마다 갱지 위에 나는 썼다. 아빠는 자영업, 엄마는 전업주부라고. 나는 불만투성이의 학생이었기에 도대체 궁금하지도 않은 걸 왜 묻는 거냐며 매해 투덜댔고, 전업주부가 과연 직업일 수 있는 건지에 대해 매해 고민했다. 그런데 이제와 돌아보니 후자는 고민거리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전업주부, 아니,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직업인 것을! 갱지 위에서 엄마의 직업을 설명해줄 마땅한 단어를 찾아 고민하던 어린 시절의 고지식한 내가 생각났다. 시팔, 그냥 직업을 엄마라고 쓸 걸 그랬다. 그렇게 센세들이나 한 방씩 먹여줄 걸.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을 텐데. 직업이 엄마든 전업주부든 땅콩이든.



앞선 이틀을 포함해 지난 몇 개월 동안 엄마 덕에 나는 임영웅 선생님의 목소리에 덩달아 젖어 지냈다. 나중에는 부러 임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해 관련 노래를 찾아 듣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할 정도였으니까. 그젠가는 그 많던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조용한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임영웅 선생님이 커버한 정수라 선생님의 노래 <어느 날 문득>을 들으며 감정 이입을 하다가 볼륨 조절에 실패해 에어팟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간 듯하여 나도 모르게 궁색한 변명의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아,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저희 엄마가 좋아해서요! 저는 사실 힙합 음악을 더 좋아해요! 특히 미국 힙합이요!"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듯이
날 위해 이제는 다 비워야 하는데
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 봐요




오래도록 푹 끓인 엄마의 정성 가득한 사골국 같은 임 선생님의 깊은 목소리는 기성 가수 흉내 따위로 만들어진 수준은 아닌 듯했고, 그의 인생사 사연이 연민과 존경,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부르는 것처럼 그의 노래 속에 담긴 감정 또한 위아래, 좌우로 크게 요동쳤다. 또래로서 내가 보는 그는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영웅'이란 이름과 '1'이란 등수에 걸맞은 과묵함으로 둘러친 적당한 무게감과 언제나 준비된 듯한 여유작작한 태도, 나도 미처 몰랐던 마음 저 깊은 밑바닥에 깔린 감정까지 살뜰히 긁어모아 대신 전달해주는 듯한 중저음의 보이스는 자꾸자꾸 파보고 또 까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자신이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라도 된다는 듯이 그는 매콤하고 달콤한 태도로 겹겹이 무장한 채 음악으로 정중하게 말을 걸었고, 마치 껍질 깐 양파라도 된다는 듯이 무대 위에 매끈하게 서서 당당하게 노래했다. 더욱이 조용히 자기 갈길 가던 파리 한 마리가 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잘못 빠졌다가는 다시 살아 나올 길이 아득한 미로 속처럼 빼곡한 머리숱(미남미녀의 조건이자 남편의 휑한 그곳과 대비된다), 축구로 다져진 탄탄한 허벅지와 곧게 뻗은 다리, 싼마이 수트의 단계를 몇 급 위로 후딱 올려버리는 타고난 신체 비율 등의 육체적 조건은 '오빠'의 존재가 여전히 절실한 중년 소녀팬들을 대단히 애타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궂은비가 오면
세상 가장 큰 그대 우산이 될게
그댄 편히 걸어가요

걷다가 지치면
내가 그대를 안고 어디든 갈게
이제 나만 믿어요




코로나로 주눅 들어 쉬이 할 일이라곤 TV 시청뿐인 심심하고 외로운 중년 세대에게 <임영웅> 그리고 <안방 트로트>의 등장은 내가 볼 땐 적시다. 운명이자 필연 같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고, 나중이나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 말이다. '왜 하필 지금'도 아니고, '어쩌자고 이제야'도 아닌, '때마침' 찾아온 선물 같은 것. 트로트에 깊이 박인 정서 중 하나는 '안타까움'과 '애절함'인데, 임영웅은 그것을 완벽한 '남자'의 목소리로 대변한다. 그래서 중년 소녀팬들은 임영웅에게 열광한다. 그의 목소리가 내 지난했던 삶의 노래를 대신 불러줘서. 그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여서. 당신의 안타깝고 애절한 인생 사연을 내가 보듬어주겠다는 듯이 그는 절절하게 노래했고, 그 진심은 팬들에게 투명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언제쯤 웃으며 날 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땐 왜 그랬을까
그땐 왜 몰랐을까
사랑에 이별이 숨어있는지



며칠 전에 엄마에게 물었다.




무명 시절에도 관심 좀 가져주지.
임영웅 없었을 땐 도대체 어떻게 살았데?




나 또한 덩달아 임 선생님으로부터 느끼고 배우는 게 많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꾸준히 연습하며 갈고닦는 성실성과 준비성, 나의 때를 기다리는 참을성, 사람을 움직이는 따뜻한 감성,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개성, 어른의 마음을 푹 놓이게 하는 인성까지. 이재용 선생님이 삼성의 대표라면 임영웅은 육성의 대표라고나 할까. 언젠가 가수 박진영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들로부터 주목받기 위한 권리는 '실력'과 '도덕성'이 둘 다 뒷받침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라고. 그의 목소리와 일상적 태도로부터 그 두 가지 가치가 선명히 보이기에 어른들은 임 선생님께 그다지도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제로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인데, 배울 게 참 많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두고 가던
나만 스쳐 간 행운이 모여
그대가 되어서 내게 와준 거야





덕(후)질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누군가에, 무언가에 홀딱 빠져버리면 세간의 체념적 평과는 달리 인생이란 조금도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게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나는 늦게나마 우리 엄마가 그걸 깨닫게 된 것 같아 기쁘고 행복하다. 덕(후)질의 자발적 홍보대사로서 나는 주변에 늘 강조해왔다. 실패로 점철한 인생에서 다만 매일 같이 성공할 수 있는 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좋아하는 건 자유고 거기에 실패란 없으니까. 나의 엄마를 포함해 임영웅을 좋아하는 모든 중년분들의 자유와 성공을 응원한다. 더 깊이, 더 오래, 더 많이 덕질하시길!




글을 마무리하며...

인기 영합 키워드를 나열해 클릭을 유도하는 행태를 두고 조회수를 빤다고들 이야기한다. 저속한 표현처럼 느껴져서 삼가게 되지만, 글 쓰기나 영상 제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조회수를 빨아줄 만한 인기 키워드의 유혹은 지하철 역사의 와플이나 델리만쥬의 향기만큼이나 강력하다. 그리고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대단히 슬프지만 또 달콤한 일이다. 오늘 나는 '임영웅'이라는 키워드가 나의 블로그 조회수를 은근히 빨아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걸 순순히 고백한다.

내가 틈나는 대로 써대는 최신 미국 힙합 이야기나 최신 외국 패션 디자이너 소개, 120년 전 미국 소설가에 관한 잡설 등은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의 특성상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소재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나는 약 2년 여의 직접 경험을 통해 실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이런저런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을 전전해왔으나, 마음 놓고 편하게 글을 쓰기에 이 '브런치'만큼 사용감이 편리하고 깔끔한 곳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에 다음카카오에 감사함을 가지고 오늘도 즐겁게 나만의 글을 써 재끼고 있다.

‘콘텐츠는 돌고 돌아 적임자에게 도달한다’라는 미국의 유명 기업가 게리 바이너척의 명대사를 곱씹으며 나는 오늘도 인기 하나 없는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면서 한창때의 에너지를 미련하게 소모하는 멍청한 나를 다독일 뿐이다.

독자 선생님들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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