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프피의 주말 일기

멋진 남자 단상 그리고 식물원에서 흠뻑 젖기

by 스눕피


토요일: 멋진 남자


“돌이켜보면 남편은 언제나 스코티와 저를 위한 행복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읽어야 할 책들, 가야 할 곳들. 그가 곁에 있을 땐, 인생이 참 약속으로 가득 차 보였어요.”

젤다 피츠제럴드


육체와 욕망을 가진 들끓는 존재가 성실한 노력은 반드시 통할 거란 열렬한 믿음을 기반으로 삶의 모든 자원을 빈틈없이 관리하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고, 마침내 세속적 성공을 움켜쥐는 전통적인 제스처도 좋다.


하지만 선함과 명예로움, 호의와 너그러움, 비난을 감수하는 공정함에 대한 지향,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세심한 마음 챙김이 '멋진 남자'를 정의 내리는 일에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술에 잔뜩 취해 곧 결혼을 앞둔 사촌 형의 앞길을 더럽게 축하하며 봉피양 용산점의 냉면 사발에 얼굴을 묻고 속으로 저렇게 덧없이 되뇌었다.


형,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지? 진심으로 축하해. 내가 더 기쁜 걸? 행복해야 돼!


그건 그렇고 이제 술에서 깰 시간이야.



일요일: 식물원


어젯밤 마신 술 때문에 손발이 저렸다. 화끈한 해장이 필요해. 다대기, 고추, 편마늘을 더한 모닝 순댓국은 숙취에 특효가 있다. 뜨겁고 매운 국물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앗, 방금 이건 눈물인가?ㅜㅜ


완뚝 후 땀 식히고 소화시킬 겸 어린이대공원에 입성했다. 목적지는 식물원. 와, 근데 이거 뭐지? 제길슨, 4월 같지 않은 날씨야. 푹푹 찐다. 온실 속 뿜뿜하는 피톤치드가 머릿속 땀구멍을 죄다 뚫어버린다. 저기 저 한 구석에 작은 텐트를 하나 쳐 두고 딱 한 달만 먹고 잘 수 있다면 내 몸 안팎 만성 염증의 뿌리를 뽑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쓰잘때기 없는 지저분한 망상 끝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주변을 돌아보니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이 잔뜩이다. 역시 주말 오전의 어린이대공원이란 나의 철없음과 마주하는 시공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생각의 끝, 행복이란 무엇일까.


"삼십 대에는 친구를 원하지만, 사십 대가 되면 친구가 사랑처럼 우리를 구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라고 피츠제럴드 센세가 말씀하셨지.


내 나이 서른여섯, 이건 포기가 아니야. 잠정 보류일 뿐이야.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희열이 형, 뭐? 벌써 컴백한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교수님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