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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턱에 철사를 박은

칸예 웨스트와 뜬겁새로 다람쥐가 된 차카 칸

by 스눕피


Through The Fire

or The Wire?


2020년, 시카고 출신의 전설적인 여성 보컬리스트 차카 칸 Chaka Khan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인 시절 칸예 웨스트 Kanye West의 샘플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어느 날 칸예가 제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병원에서 막 퇴원했는데, 회복하는 동안 제 노래가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됐다면서요.

그러면서 <Through The Fire>라는 제 노래의 후렴구 샘플링 허락을 구했어요.

노래 제목은 <Through The Wire>가 될 거 같다면서 가사도 좀 바꿔봤다구요.“


차카 칸 혹은 샤카 칸


칸예의 진심 어린 고백이 가슴 깊이 와닿았던 차카 칸은 커리어 이래 이례적으로 그녀의 노래를 재사용할 수 있도록 그에게 허락했다.



하지만 샘플링 곡이 공개되고, 자신의 목소리를 다람쥐떼의 촐싹거리는 조잘거림처럼 만들어 놓은 칸예에게 그녀는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아주 모욕적이었어요.

아니, 그냥 얼탱이가 없었죠.

제 목소리를 그런 식으로 편집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럴 줄 알았다면 거절했겠죠.

샘플링을 허락할 땐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차피 내가 부른 노래이고, 온전한 내 목소리니까 망칠 수는 없겠지?

그런데 칸예는 어떻게든 제 목소리를 망쳐놨더군요.

그 양반이 결국 방법을 찾은 거죠.

아주 질색팔색했어요.”


2000년대 초반,


천재 신예 프로듀서 칸예는 고전 소울 음악으로부터 보컬 샘플을 추출하고, 그것의 피치를 고음역대로 올려 독특하고 신선한 소리(마치 애니메이션 속 다람쥐들의 높고 빠른 목소리처럼)로 구현하는 칩멍크 소울(Chipmunk Soul) 사운드 메이킹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차카 칸은 그의 예술 같은 장난질에 홀딱 넘어가 아름다운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친구들이
날 못 알아봤대.

Vanilla Sky 속
Tom Cruise 같았대.

<Through The Wire> 중에서



사고로 얼굴을 크게 다친 칸예와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톰 크루즈


2002년 10월 23일,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녹음 세션을 마치고 LA 작업실에서 집으로 복귀하던 칸예는 렉서스 LS 400의 운전대를 잡은 채 피로에 지쳐 깜빡 졸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량과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칸예는 턱뼈가 산산조각 나는 중상을 입었고, 턱에 철사를 박는 응급 대수술을 받았다.



입원 기간 동안 그는 빨대로 힘겹게 밥을 넘겨 삼켜야 했지만, 음악 열정만은 결코 삼켜 넘기지 못했고, 철사에 턱이 묶인 상태로 투혼 가득 어눌한 랩을 이어갔다.



천사의 도움으로 죽음이 간신히 자신을 비껴갔다고 생각하며 생사의 경계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긴급 수정하기도 한 칸예였다.


철사 너머로 랩을 내뱉는 중이야.

지금 맘속에 쌓인 게 너무 많아.

이 순간 난 모든 걸 걸어도 좋아.

진짜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지.

니들은 지금 내 감정의 무게를

조금도 헤아리지 못할 거야.

<Through The Wire> 포스트 코러스


칸예는 턱을 철사로 고정한 채 녹음한 정규 데뷔 앨범의 리드 싱글 <Through The Wire>의 아웃트로에서 다음과 같은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의사가 턱에 플레이트를 박아야 한다길래, 내가 그랬지.

형, 그거 알아요?

그럼 나 이제 비행기 절대 못 타요. 안 그래도 지금 주얼리가 덕지덕진데, 턱에 철사까지 박으면, 공항 보안 검색대도 통과 못할 거라구요.

진심이에요? 진짜 수술 할라구요?”


칸예 스스로도 자신의 인생을 바꾼 새벽으로 꼽는 그날의 사고는 “죽다 살아난 이의 과장된 무용담”이자 “강렬한 자전적 고백을 담은 세기의 음악"이 되어 세상을 뒤흔들었다.



치명적 사고를 예술의 기회로 전환할 줄 아는 뜻밖의 여유, 거장의 소울을 다람쥐 소리로 뻔뻔하게 뒤집는 굳센 박력 정도는 갖춰야 관종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한편 오토튠을 남용하는 후배 가수들을 향해 차라리 상시 채용을 진행하는 우체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더 나을 거라며 촌철살인의 디스를 날리던 독설가 차카 칸은 칸예의 샘플링과 관련한 후속 인터뷰를 통해 이미 많은 것을 체념한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 일에 대해 괜히 짜증 냈던 것도 제 잘못이죠.

그때의 제가 지금처럼 랩 게임을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그 일이 그렇게까지 거슬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요.

그런 유치한 감정을 붙들고 살지 않는 거죠."


망가진 턱뼈처럼 사납게 올라간 피치와 함께 동향 대선배의 목소리를 다람쥐로 만들어 버린 한 남자의 객기와 그것을 결국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의 허무한 마무리.


돌아보니 그들의 자강두천 같은 만남의 결과는 힙합 샘플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선구적 실험으로 기록됐고, 당대를 뒤흔든 음악 트렌드가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순간과 마주하게 되고, 뒤늦게야 납득되는 것들로부터 세상을 겨우 배우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불안하고 뒤틀리고 때로 불완전한 상태만이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이야기가 인생에는 분명 존재하는 법이고, 시간이 제법 지난 후에야 우리는 그것들의 소중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po31fx9xbeQ?si=1O8Xm7Sabv53mdo2

"샤카 칸 할머니, 91년도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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