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중독자의 존레논展 감상기

by 스눕피


"전시는 너무 좋았습니다만,

글이 너무 아쉬웠어요."


나는 유명 화가의 전시회에 가서도 그림보다는 누군가에겐 곁가지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글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약간 이상한 종류의 사람이다.

어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존레논展-이매진 존 레논>에 다녀왔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글'에 대단히 실망하였으나, '사진'과 '그림' 그리고 '영상'에 크게 감동하는 바람에 일종의 상쇄 효과로 대체적으로 만족을 느낀 전시였다.


'글'이 도대체 어땠길래? 먼저 내가 실망한 문제의 글 일부를 살펴보자. 다음에 소개하는 '글실수(?)'가 빙산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건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완벽하게 주술 구조를 일치시키고, 띄어쓰기와 맞춤법 등을 꼼꼼히 신경 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깜빡 놓치기도 쉽고 매일 보아도 헷갈리는 것이 띄어쓰기와 맞춤법이니까.

나도 이렇게 포스팅까지 해가며 피곤하게 굴고 싶진 않았다. 나도 한때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갑질 아닌 갑질을 겪고, 피곤한 고객님들로부터 적잖이 시달리며 악몽을 꾸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전시를 보며 절실하게 느낀 안타까운 점을 누군가 말하지 않는다면, 주최사와 주관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 분명하기에 앞으로 더 좋은 전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이렇게 꼴에 지적하고 깝죽거리는 포스팅을 하나 올리기로 결정했다.



무려 전시장의 초입, 관람객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소개글 속에서 나는 글실수(?)와 만나게 되는 호사를 누린다.


'다코타 빌딩 앞을, 존 레논과 요코 오노가 리무진에서 내리고 있었다.'

'존 레논은 39 구경 권총을 들고 있고 있는 한 청년을 마주했다.'


음, 시작부터? 주관사 (주)한솔비비케이 관계자님들, 사진과 영상 그리고 그림 전시에 신경 쓰시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는 소개글에 몰입하여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고 이해하기도 한다는 걸 부디 염두에 두시고 조금만 더 꼼꼼하게 소개글에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이런 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작은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길 때, 일의 완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음반 부서를 성공적으로 확장시킨 브라인언은'

'그의 언어와 손짓 하나하나에는 신뢰감과 자신감에 차 있었고, 비틀즈 멤버의 신뢰를 얻기 충분했다.'


고야드 클러치백을 겨드랑이에 끼고 교실에서 친구들로부터 일수를 걷는 학창 시절의 존 레논


'수업에 빠지기 일수였던 존 레논은'


포털 사이트에 '존레논展'을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전시회 관람 후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한 챕터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듯 전시장의 모든 구역을 카메라에 꼼꼼하게 담아 전부 포스팅하는 친절한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별 걱정을 다 하는 관람 후기도 있어줘야 어떤 구색이 갖춰지는 것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나라도 나 같은 관람객은 정말 받고 싶지 않을 듯 한데...... 꺼져!


다음은 진심 120%입니다.


"솔직히 전시 너무 좋았어요. 비틀즈의 A Hard Day's Night와 존 레논의 Love가 흘러나올 땐, 그냥 콱 죽고 싶었다구요. 존 레논의 그 귀여운 그림들을 볼 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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