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눕피의 단상단상(13)
대학 3학년 땐가 들었던 영어 수업이 하나 생각난다. 강사는 말끔하게 생긴 미국인 양아치였는데, 이태원 죽순 후배의 귀띔에 의하면 그곳에 자주 출몰하여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다닌다고 했다.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쓸데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던 수업이 드디어 끝을 향해 가던 중 강사는 성적을 매기기 위한 파이널 테스트에 관한 정보를 공개했다. 일대일로 약 5분씩 자신과 영어로 자유로운 대화를 하면 공인 영어시험인 오픽의 채점 기준(=강사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서 등급을 매겨주겠다는 것.
대망의 테스트 날에는 비가 내렸고, 테스트 시간은 오후 2,3시 전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에 맞춰 강사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윽고 나는 강사와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앉아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그는 재빠르게 공격을 시작했다. 점심으로 뭘 잡쉈냐는 깔끔하고 시의적절한 공격이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제스처와 함께 "굴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라고 말하며 가볍게 방어했다. 굴 돌솥비빔밥을 영어로 급히 설명할 처지는 못되었기에 그저 '굴'을 먹었다는 말로 가볍게 받아친 것이었다. 강사는 점심으로 굴을 먹었다는 내 말을 듣더니 대뜸 지금 horny하냐는 강력한 스매싱을 날렸다. 다짜고짜 달아올랐느냐는 그의 대책 없기에 더욱 강력한 스매싱 공격에 나는 왜 그런 걸 묻느냐며 정색과 웃음을 적절히 섞어 반격하였다. 그는 나의 반격에 당황한 모양인지 얼굴이 새빨개졌고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표정으로 자신이 방금 한 말을 잊어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음, 나는 그러마고 약속했고 그는 내게 A+를 주었다.
황당한 체험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마치 첫사랑처럼. 그건 그렇고 A+는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