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잡지에 관한 생각

스눕피의 단상단상(12)

by 스눕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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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을 자주 들었다. 여러 명사들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것이 좋았다. 무릇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멋있는 법이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반하게 되어있다.

'진중권의 문화다방'에 전직 잡지 에디터이자 자칭 ‘글 쓰는’ 허지웅이 나왔을 때, 진중권은 잡지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종이의 질감과 그것을 넘길 때의 냄새와 촉감 그리고 콘텐츠의 배열 등이 좋다고 말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해당 에피소드를 다시 들어보진 않았지만, 대충 그런 말을 했던 건 맞다. 여하튼 나는 진중권의 입에서 조금은 다른 관점의 말이 나오길 기대했었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 미학자니까. 그렇다고 내가 “당신은 미학 박사니까 미학적으로 잡지에 대해 멋지게 설명을 해보란 말입니다!”하고 떼쓰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공부 잘하는 사촌 형에게 공부 비법을 물어보는 좀 부족한 사촌 동생의 간지로 미학자가 바라보는 남성지의 매력이 궁금했던 것이다.


음, 남성 잡지의 매력은 뭘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그것을 좋아하겠으나, 나는 허영심의 충족이 남성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리는 허세 못 막는 것이 남성 잡지다. 피처 에디터와 패션 에디터는 글을 최대한 멋지고 맛나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가 언제 규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성 잡지의 본질이 그런 거니까. 손석희의 말마따나 한걸음 더 나아가야 소비자가 돈 주고 사서 보는 것이다.

쉽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말은 이제 좀 싫증 난다. 졸라 짜증 나는 것이다. 왜 모든 글을 쉽게 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라고? 초등학생도 알아듣는 쉬운 단어와 표현으로 무장한 잡지의 콘텐츠를 상상해보라. 때와 장소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글’ 앞에서는 대동단결이다. 그저 쉽게! 쉽게! 쉽게! 그렇다고 뭐, 내가 잡지의 글은 어려워야 한다는 막돼먹은 주장을 펼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글이란 격식에 맞는 자유로운 쓰기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남성 잡지에는 내가 살 수 없는 것들이 예쁘게 나열되어 있다. 가격은 높고, 살 만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남성잡지는 사실 그 누구를 위한 잡지도 아니다. 내가 살 수 없는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다만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알고, 그것을 내가 언젠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어보는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 대는 것이다.


남성 잡지를 사면 내가 가장 유심히 들여다보는 건 ‘인터뷰’다. 스포츠 스타든 일반인이든 아이돌 가수든 모델이든 영화배우든 배울 것이 참 많다. 그들의 어떤 답변은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듯 관점이 훌륭하고 생각이 깊어서 비록 그 시간이 잠시뿐 일지라도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진다. 아따, 성님!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고 나서 퇴색한 것들이 참 많다. '잡지'도 그중 하나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진, 영상, 그림, 글 따위가 속수무책으로 온 신경을 자극하는 마당에 ‘잡지 콘텐츠’의 힘은 약해지고 그 고유의 멋도 예전만 못하다. 뭐, 당연한 거다. 하지만 책의 미래에 관한 비관론자들의 암울한 예언이 늘 쓸데없는 걱정으로만 끝나 듯이 잡지의 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그 종이의 질감과 냄새, 허세로 아름다운 콘텐츠는 쉽게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허영이란 본능과도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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