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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 이도 Feb 08. 2022

공포 로맨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저승까지 끌고 가는 관계, 구파도 감독 신작

月下老人. 달 월, 아래 하, 노인 노, 사람 인의 한자로 풀이하면 ‘달 빛 아래의 노인’이 된다. 중국 고대 설화에서 시작되어 붉은 실로 남녀의 다리를 묶어 인연을 맺어주는 전설 속의 노인을 뜻한다. 현대에서는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인 중매하는 중매쟁이를 뜻하기도 한다. 멜로/로맨스 장르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구파도 감독은 전작 공포 스릴러 <몬몬몬 몬스터>로 2017년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다. 두 장르는 다르지만 각각의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감독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판타지 로맨스물이라는 장르를 소화해낸다. ’사후세계’, ‘환생’이라는 아이템뿐만 아니라, 보고 있자면 묘사하는 사후 세계의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세계관이 국내 작품 <신과 함께>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은 <신과 함께>를 보고 2001년에 쓴 소설 <月老>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밌다. 복합적인 장르의 혼합과 스토리 진행 호흡에서 B급 영화로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핵심으로 다뤄지는 소재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사자(使者)로 일하게 된 주인공에게 주어진 임무는 인간들의 연(緣/영화에선 부부가 되기 위한 젊은 연인을 다룬다)을 이어주는 일이다. 이에 따라 파생된 배경이자 사자로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샤오룬/핑키/원한을 가진 악령까지 세 명이 된다. 이들의 생전 애정 관계를 풀어보자. 짝으로 다니게 된 샤오룬과 핑키 중 핑키는 나름 연이라고 생각했던 남성으로부터 배신당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인물이다. 사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던 중 그 남성에게 복수하기 위해 환생이 불가한 악령이 되는 것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때 나타난 악령 운명 깃발을 떨어트리게 하는 샤오룬의 등장은 복선처럼 후에도 핑키의 운명을 다른 길로 안내한다. 여기까지’ 딱히 생전에 미련이 없을 것만 같은 평범한 ‘전사’라면 샤오룬은 끈끈한 연을 맺던 연인이 있던 인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줄곧 샤오미를 따라다니며 결혼해달라고 설득한 끝에 그 답을 받으려는 순간 벼락에 맞아 죽게 된 샤오루는 이승에 사랑하는 연인 샤오미를 남겨두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령은 500년 전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끊임없이 이 일을 잊고 환생하는 부하들을 보며 원한을 품고 악령이 된 인물이다. 이 셋은 크게 두 분류 사랑을 하던 사람/사랑을 하고 싶었던 사람로 나뉘며 그 중 후자에 속하는 핑키와 원령은 그 중에서도 원한의 정도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핑키 또한 원한을 가지고 자신을 죽인 남성을 죽일까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새로운 연을 찾아간다. 하지만 비슷하게 애정(관계)을 갈망하던 악령의 원한은 점점 집착으로 변해 멈출 수 없게 된다. 이들은 저승에서까지 애정을 갈망하는 이승과는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저승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라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전생의 기억을 잃었던 가진동이 키우던 강아지 아루를 만나 기억을 되찾으며 그와 동시에 혹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전에 느꼈을 감정이 느껴지는, 가진동(샤오룬 역) 얼굴의 미세한 떨림은 모든 서사를 제쳐두고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저승에 가게 된 이의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판타지/공포/로맨스 멜로의 뒤죽박죽이지만 완성도 높은 장르를 오가며 2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장면들 와중에도 감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핵심소재가 한몫했다는 의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봐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사후 세계에서 받는 묵주에서 악행으로 인한 3알이면 돌고래로 환생할 수 있다는 디테일한 설정들에서 환생을 기대해보게 만든다. 2021년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국내 영화사벌집에서 공동제작 및 수입하여 그린나래미디어를 통해 2월 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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